AI, 광고를 만들다
제43화
발행일: 2025년 06월 20일
다중 터치 어트리뷰션 모델은 광고주들에게 새로운 수준의 통찰력을 제공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예산을 훨씬 더 현명하게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고도화될수록, 또 다른 종류의 ‘병목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기술이 아닌, ‘인간의 창의성’ 영역에서였다.
대형 패스트패션 브랜드 ‘ZARA’의 디지털 마케팅 팀장이 데이비드와의 미팅에서 하소연했다.
“데이비드, 당신들의 타겟팅 기술은 놀랍습니다. 우리는 이제 ‘20대 초반, 패션에 관심이 많고, 최근 저희 앱에서 특정 원피스를 본 사용자’ 그룹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게 됐죠.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 수많은 타겟 그룹, 수많은 광고 지면(웹, 앱, 유튜브, 소셜 미디어 등)에 맞춰서, 각각 최적화된 광고 소재(배너 이미지, 광고 문구)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저희 디자인팀은 매일 수십, 수백 가지 버전의 배너를 만드느라 녹초가 되고 있어요. 이건 ‘규모의 저주’가 다시 돌아온 것과 같습니다. 이번에는 기술이 아니라 창작의 영역에서요.”
그의 말은 광고팀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타겟을 찾는 ‘조준경’의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정작 발사해야 할 ‘총알(광고 소재)’을 만드는 과정이 여전히 수작업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최고의 타겟팅 시스템이 있어도, 그에 맞는 최고의 광고 소재가 없다면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는 팀의 가장 진보적인 엔지니어 그룹, 특히 AI와 머신러닝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의 불씨가 되었다.
팀의 기술 리더 중 한 명이자 AI 전문가인 ‘라지브’가 팀 회의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만약… 기계가 광고를 직접 만들게 하면 어떨까요?”
회의실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대부분의 팀원들은 그것을 SF 영화 같은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라지브는 진지했다. 그는 구글 내부의 AI 연구팀이 개발 중인 최신 기술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수십억 개의 광고 문구와 그 성과 데이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단어 조합이 높은 클릭률을 이끌어냈는지, 어떤 문장이 사용자들의 구매를 유도했는지에 대한 방대한 학습 자료가 있는 셈이죠. 이 데이터를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에 학습시킨다면, 모델은 새로운 제품에 대한 광고 문구를 스스로 생성해낼 수 있습니다.”
“이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억 개의 광고 이미지를 분석하여, 어떤 구도, 어떤 색감, 어떤 모델의 표정이 효과적인지를 학습한 ‘이미지 생성 모델’은, 우리가 제공한 상품 이미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버전의 광고 배너를 자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라지브의 아이디어는 기존의 ‘다이내믹 리타겟팅’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다이내믹 리타겟팅이 미리 만들어진 ‘템플릿’에 상품 정보를 ‘조합’하는 수준이었다면, 라지브가 제안한 것은 AI가 ‘백지상태’에서 문구와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 담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구글 광고의 미래를 바꿀 새로운 유형의 광고 상품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름하여 ‘반응형 광고(Responsive Ads)’.
‘반응형’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 지면에 대한 반응: 광고가 노출될 지면의 크기와 형태에 맞춰, AI가 광고 요소(이미지, 제목, 설명)를 실시간으로 재조합하여 최적의 레이아웃을 구성한다.
- 성과에 대한 반응: AI는 수많은 조합으로 광고를 노출시킨 후, 어떤 조합이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지를 지속적으로 학습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조합을 자동으로 더 많이 노출시킨다.
광고주는 더 이상 수십 가지 버전의 배너를 직접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저 광고를 구성할 몇 가지 기본 요소 – 여러 장의 이미지, 몇 개의 광고 제목, 몇 개의 설명 문구 – 만 제공하면, 나머지는 모두 AI가 알아서 처리해주는 방식이었다.
알렉스는 이 반응형 광고의 성과 측정 및 리포팅 시스템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이제 단순히 캠페인 전체의 성과만 보여주는 것을 넘어, 어떤 이미지와 어떤 제목의 ‘조합’이 가장 높은 시너지를 냈는지를 분석하여 광고주에게 보여줘야 했다. 그것은 마케터가 AI의 창의적인 결과물을 이해하고, 다음 광고 전략에 대한 힌트를 얻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는 시스템을 설계하며, 엔지니어의 역할이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과거의 엔지니어가 시스템의 ‘규칙’을 직접 설계했다면, 이제는 AI라는 ‘학습하는 존재’를 만들고, 그 존재가 최적의 답을 스스로 찾아가도록 돕는 ‘AI 트레이너’이자 ‘AI 해석가’로 진화하고 있었다.
인간의 창의성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광고 제작의 과정에, 마침내 인공지능이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