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무게
제45화
발행일: 2025년 06월 21일
‘차세대 광고 플랫폼 팀’의 기술 리드. 알렉스의 명함에 새겨진 직함은 그에게 자부심을 주었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다. 그의 일과는 완전히 바뀌었다. 하루 종일 코딩에 집중하던 시간은 사라지고, 그의 캘린더는 끝없는 회의와 면담, 그리고 코드 리뷰 요청으로 가득 찼다.
팀은 구글 내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에이스 엔지니어 5명으로 구성되었다. 각자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었고, 저마다의 개성과 자부심이 강했다. 알렉스는 이들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만들어야 했다.
그가 마주한 첫 번째 어려움은 ‘기술적 의사결정’이었다. 팀의 첫 프로젝트는 차세대 DMP의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것이었다. 어떤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할 것인가를 두고, 팀원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당연히 구글 내부에서 검증된 ‘스패너(Spanner)’를 사용해야 합니다.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으면서도 강력한 일관성을 보장하죠.” 한 엔지니어가 주장했다.
“아닙니다. 스패너는 너무 무겁고 비용이 비쌉니다. 우리는 더 빠르고 유연한 ‘빅테이블(Bigtable)’ 같은 NoSQL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다른 엔지니어가 반박했다.
과거의 알렉스라면, 자신도 논쟁에 뛰어들어 기술적인 우위를 증명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심판이자 중재자였다. 그는 양쪽의 주장을 경청하며 장단점을 분석하고, 단순히 기술적인 우위를 넘어,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목표와 비용, 유지보수성까지 고려하여 최종 결정을 내려야 했다.
“두 분의 의견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최고의 기술’을 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하는’ 기술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 팀의 초기 목표는 빠른 프로토타이핑과 실험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개발 속도가 더 빠르고 유연한 빅테이블로 먼저 시작하고, 추후 시스템이 확장될 때 스패너로의 마이그레이션을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그의 결정에 모두가 100% 만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명확한 논리와 방향성 제시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는 리더의 결정이 단순히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팀이 동의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합의’를 만드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두 번째 어려움은 ‘사람’의 문제였다. 팀원 중 한 명인 ‘에밀리’는 뛰어난 알고리즘 설계 능력을 가졌지만, 문서화와 협업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녀가 작성한 코드는 천재적이었지만, 그녀 자신 외에는 아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알렉스는 그녀와의 일대일 면담을 신청했다. 그는 비난하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
“에밀리, 당신의 알고리즘은 정말 훌륭합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갑자기 휴가를 가게 되면, 이 코드를 누가 수정하고 유지보수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당신 한 사람에게만 머무는 것은 팀 전체에 큰 손실입니다.”
그는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팀워크의 중요성을 설득했다. 그 후, 에밀리는 조금씩 자신의 코드에 주석을 달고, 설계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리더십이 지시와 명령이 아닌, 공감과 설득을 통해 발휘된다는 것을 배웠다.
가장 힘든 것은 ‘시간 관리’였다. 그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팀원들의 코드 리뷰 요청에 응답해야 했다. 다른 팀과의 협업을 위한 회의에 참석하고, 상위 리더십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그의 시간은 조각나 있었고, 정작 자신이 깊이 생각하고 연구할 시간은 부족했다.
그는 과거에 사라와 데이비드가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일들을 처리하며, 자신과 같은 엔지니어들이 코딩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방패막이였다. 그리고 이제 그 방패가 자신의 손에 들려 있었다.
어느 늦은 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홀로 남아 복잡한 아키텍처 다이어그램을 정리하던 알렉스는 문득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코드를 완성했을 때의 명쾌한 성취감 대신, 수많은 사람과 문제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무겁고 흐릿한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리더의 길은 화려하지만 고독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고 있는 이 무게가, 자신뿐만 아니라 팀 전체를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게 할 추진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다시 마커를 잡고, 미래를 향한 설계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