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캔버스, 생성형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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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27일

‘차세대 광고 플랫폼 팀’은 쿠키 없는 미래의 여러 갈래 길을 성공적으로 개척해나가고 있었다. 알렉스의 리더십 아래, 팀은 안정감을 찾았고, 업계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구글이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파도를 넘자, 그들은 바다의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또 다른 거대한 해류와 마주하게 되었다. 문제는 더 이상 타겟팅이나 프라이버시가 아니었다. 광고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 바로 ‘크리에이티브(Creative)’였다.

계기는 세계 최대의 소비재 기업 중 하나인 ‘유니레버’와의 파트너십 미팅에서 시작되었다. 유니레버의 글로벌 마케팅 책임자는 구글의 기술력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했다.

“알렉스, 당신들의 ‘반응형 광고’는 훌륭합니다. 저희가 몇 가지 이미지와 문구를 제공하면, AI가 최적의 조합을 찾아주니 디자이너들의 반복 작업이 많이 줄었죠.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의실 스크린에 자신들의 제품 포트폴리오를 띄웠다. 수백 개의 브랜드, 수천 개의 제품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저희는 이 모든 제품을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판매합니다. 각 나라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시즌에 맞춰 광고를 만들어야 하죠. 여름 시즌 브라질 시장을 위한 샴푸 광고와, 겨울 시즌 캐나다 시장을 위한 핸드크림 광고는 메시지와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결국 저희는 여전히 수만 가지 버전의 ‘원본 재료(이미지와 문구)’를 만들기 위해 거대한 크리에이티브 팀과 광고 에이전시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광고의 ‘마지막 마일(Last Mile)’에 남겨진, 인간의 노동력이라는 거대한 병목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문제는 알렉스의 머릿속을 며칠 동안 떠나지 않았다. 그는 팀 회의에서 이 문제를 공유하며,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AI에게 광고 소재의 최적의 ‘조합’을 찾게 했습니다. 만약, 한 걸음 더 나아가서 AI에게 ‘텅 빈 캔버스’를 주고, 광고 소재 자체를 직접 만들게 하면 어떨까요?”

회의실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팀원들은 리더의 말이 너무 나아갔다고 생각했다. 기계가 창의적인 문구를 쓰고, 예술적인 이미지를 그린다는 것은 공상 과학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알렉스는 이미 답을 준비해왔다. 그는 구글 AI 연구팀의 내부 발표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구글은 수년 전부터 거대 언어 모델(LLM)을 개발해왔습니다. 이 모델들은 인터넷의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하여, 인간처럼 글을 쓰고, 요약하고, 대화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델에게 우리의 방대한 광고 성과 데이터를 학습시킨다면, 광고 카피를 쓰는 것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영역입니다.”

그는 다음 슬라이드를 넘겼다. 그곳에는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확산 모델(Diffusion Model)’이라는 이미지 생성 기술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이미지 생성 기술 역시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텍스트로 ‘푸른 해변을 배경으로 선글라스를 쓴 행복한 표정의 여성’이라고 묘사하면, AI가 그에 맞는 사진 같은 이미지를 직접 생성해낼 수 있습니다.”

팀원들은 스크린에 나타난, AI가 생성한 실제 이미지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더 이상 공상 과학이 아니었다. 이미 현실이 된 기술이었다.

알렉스는 팀에 첫 번째 실험을 제안했다.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습니다. 아주 간단한 것부터 해보죠. 우리가 가진 언어 모델을 이용해, ‘새로운 친환경 세제’에 대한 광고 헤드라인 5개를 생성하는 작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봅시다.”

팀은 반신반의하며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며칠 후, 알렉스를 포함한 팀원들은 프로토타입의 결과 화면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입력]: 제품명: 에코 클린 / 특징: 식물성 성분, 강력한 세척력,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
[AI 생성 헤드라인]:

  1. 지구를 지키는 가장 깨끗한 방법, 에코 클린.
  2. 자연의 힘으로, 얼룩은 깨끗하게, 마음은 편안하게.
  3. 강력한 세척력, 이제는 착하게 만나보세요.
  4. 에코 클린: 당신의 빨래가 지구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
  5. 미래를 생각하는 오늘의 선택.

그 문구들은 인간 카피라이터가 쓴 것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고, 감성적이며, 설득력이 있었다.

팀원들은 자신들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음을 직감했다. 그들은 단순히 광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었던 ‘창의성’의 경계를 허무는, 거대한 변화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