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가능한 AI의 힘
제67화
발행일: 2025년 07월 02일
첫 번째 보고 이후, 세기의 대결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톰 AI는 여전히 단기 ROAS에서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구글은 ‘브랜드 안전성’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P&G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알렉스는 만족하지 않았다. 방어만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 그는 아톰 AI의 블랙박스를 뛰어넘는, 구글만의 결정적인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무기의 힌트는 P&G 마케팅팀과의 다음 회의에서 나왔다. 올레이의 브랜드 매니저가 새로운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희는 최근 Z세대 사이에서 ‘클린 뷰티(Clean Beauty)’ 트렌드가 강세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친환경 성분을 강조하는 새로운 광고 캠페인을 기획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떤 메시지가 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일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마케터의 고민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알렉스는 구글의 ‘공생 모델’이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보았다.
그는 팀으로 돌아와, AI 윤리 위원회 활동을 통해 연구해왔던 ‘설명 가능한 AI (Explainable AI, XAI)’ 기술을 이번 대결에 본격적으로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아톰 AI는 ‘무엇(What)’을 해야 할지는 알지만, ‘왜(Why)’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AI는 답을 주지만, 통찰력을 주지는 않죠. 우리는 바로 그 ‘왜’를 제공해야 합니다.”
알렉스의 팀은 자신들의 플랫폼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크리에이티브 인사이트 대시보드(Creative Insights Dashboard)’.
이 대시보드의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 가설 기반 테스트: P&G 마케팅팀은 ‘클린 뷰티’라는 주제 아래, 여러 가지 가설을 담은 광고 소재 요소들을 시스템에 입력했다.
- 이미지 가설: ‘자연의 숲을 배경으로 한 이미지가 효과적일 것이다’ vs ‘첨단 연구실을 배경으로 한 이미지가 효과적일 것이다.’
- 문구 가설: ‘100% 비건 성분’이라는 직접적인 메시지 vs ‘지구를 생각하는 당신의 아름다움’이라는 감성적인 메시지.
- AI의 소규모 실험: 구글의 AI는 이 다양한 소재 조합들을 가지고, Z세대 타겟 그룹 내에서 소규모의 A/B 테스트를 자동으로,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다.
- XAI 기반의 결과 분석: 며칠 후, 크리에이티브 인사이트 대시보드에 분석 결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A안이 B안보다 성과가 좋았다’는 식의 결과가 아니었다.
대시보드는 P&G 마케터들에게 놀라운 통찰력을 제공했다.
[XAI 분석 결과]
- 이미지 분석: “Z세대 타겟 그룹은 ‘첨단 연구실’ 배경의 이미지에 2.3배 더 높은 클릭률을 보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클린 뷰티’를 단순한 자연주의가 아닌, ‘과학적으로 검증된 안전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 문구 분석: “‘100% 비건 성분’과 같이 제품의 효능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문구가, 감성적인 문구보다 1.8배 높은 구매 전환율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Z세대가 광고의 수사보다는 투명하고 정직한 정보를 더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숨겨진 패턴 발견: “흥미로운 점은, Z세대 중에서도 ‘지속 가능한 패션’ 관련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은 예외적으로 ‘지구를 생각하는’이라는 감성적 메시지에 더 강하게 반응했습니다. 이 그룹을 위한 별도의 마이크로 캠페인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알렉스는 이 보고서를 들고 P&G를 다시 찾아갔다. P&G의 마케터들은 대시보드를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올레이의 브랜드 매니저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이건 단순한 광고 성과 리포트가 아니에요. 이건 저희가 미처 몰랐던 저희 고객에 대한 깊이 있는 소비자 리서치 보고서입니다. AI가 우리의 가설을 검증해주고, 새로운 전략까지 제안해주고 있군요!”
이것이 바로 ‘설명 가능한 AI’의 힘이었다. 아톰 AI의 블랙박스가 그저 가장 효율적인 답을 찾아낼 뿐이라면, 구글의 XAI는 왜 그것이 정답인지에 대한 ‘근거’와 ‘이유’를 제시했다. 그것은 인간 마케터가 AI의 결정을 신뢰하고, 그로부터 배워서 더 나은 다음 전략을 세울 수 있게 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생’이었다.
이 보고서 이후, 대결의 양상은 미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P&G는 구글 팀과의 회의를 더 자주 요청했고, 구글의 AI가 제공하는 통찰력을 자신들의 전체 마케팅 전략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아톰 AI는 여전히 강력한 경쟁자였지만, 그들은 P&G의 ‘실행 부서’로 남았다. 반면, 구글은 P&G의 ‘전략적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었다.
전쟁의 승패는 더 이상 ROAS라는 단 하나의 숫자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었다. 누가 광고주의 비즈니스에 더 깊이 관여하고, 더 가치 있는 지적 자산을 제공하느냐의 싸움으로 변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