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의 역습
제68화
발행일: 2025년 07월 02일
‘설명 가능한 AI(XAI)’는 구글에게 강력한 차별점을 안겨주었다. P&G와의 파트너십은 단순한 광고 집행을 넘어, 공동의 비즈니스 목표를 해결하는 전략적 관계로 발전하고 있었다. 팀은 이 새로운 무기를 앞세워 대결의 흐름을 가져왔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경쟁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이었다.
사건은 P&G의 분기 실적 발표일 직후에 터졌다. 실적은 시장의 기대치를 상회했고, 특히 올레이 브랜드의 온라인 매출 성장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P&G 내부에서는 광고 캠페인의 성공을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아톰 AI 측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한 수였다.
아톰 AI는 P&G의 실적 발표 직후, 주요 경제지에 자신들의 성과를 홍보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기고문의 내용은 교묘하고 공격적이었다.
“아톰 AI는 P&G의 올레이 캠페인에서 경쟁사 대비 지속적으로 높은 ROAS를 기록하며, P&G의 성공적인 실적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의 ‘완전 자동화 AI’는 인간의 편견이나 불필요한 가이드라인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데이터에 기반하여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블랙박스’를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포장했다.
“일각에서는 우리의 AI가 ‘설명 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하지만, 이는 AI의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단순한 패턴을 넘어, 수십억 개의 변수를 고려하여 최적의 해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AI의 진정한 가치다. 우리는 AI에게 ‘왜’냐고 묻는 대신, AI가 찾아낸 ‘결과’를 믿고 그 성과를 누리면 된다.”
이 기고문은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과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들에게는 아톰 AI의 주장이 훨씬 더 단순하고 설득력 있게 들렸다. ‘복잡한 과정은 모르겠고, 그래서 결국 돈을 더 벌어준 게 누구냐?’는 관점에서, 아톰 AI는 명백한 승자처럼 보였다.
구글 팀은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데이비드는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위기감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그들은 지금 여론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XAI를 통해 P&G 마케터들의 ‘마음’을 얻는 동안, 그들은 ROAS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숫자로 경영진과 투자자들의 ‘귀’를 사로잡고 있는 겁니다.”
사라가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
“이건 ‘마케팅팀’과 ‘재무팀’의 관점 차이와도 같습니다. 마케터들은 브랜드 가치, 소비자 통찰력 같은 장기적이고 질적인 가치를 중시하지만, 재무 담당자들은 결국 이번 분기의 구체적인 숫자, 즉 투자 대비 수익률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톰 AI는 바로 이 지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블랙박스 전략을 ‘데이터 기반의 순수한 효율성’으로 포장하고, 구글의 ‘공생 모델’을 인간의 비합리적인 판단이 개입된 ‘불완전한 자동화’로 깎아내리고 있었다.
P&G 내부에서도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었다. 마케팅팀은 여전히 구글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지만, 경영진과 재무팀에서는 ‘왜 더 높은 ROAS를 내고 있는 아톰 AI에 예산을 더 집중하지 않는가?’라는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알렉스는 자신들이 만든 기술의 가치를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들은 분명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시장은 때로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에 더 열광했다.
팀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이제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고 성과를 내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가치를, 아톰 AI의 단순한 메시지만큼이나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로 만들어내야만 했다.
블랙박스의 역습은, 기술의 전쟁이 결국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식의 전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팀에게 뼈저리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들은 이 인식의 전쟁에서 승리할 새로운 무기를 찾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