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 가치의 증명
제69화
발행일: 2025년 07월 03일
아톰 AI의 여론전은 효과적이었다. ROAS라는 명쾌한 숫자를 앞세운 그들의 메시지는 시장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구글 팀은 수세에 몰렸다. ‘브랜드 안전성’이나 ‘설명 가능한 AI’ 같은 가치들은 단기적인 재무 지표 앞에서 힘을 잃는 것처럼 보였다.
알렉스는 이 국면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는 단순히 방어적인 해명을 하는 대신, 아톰 AI의 논리가 가진 허점을 데이터로 정면 돌파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가설은 단순했다.
‘단기적인 ROAS가 반드시 장기적인 비즈니스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P&G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데이터 분석을 제안했다. 바로 ‘고객 생애 가치(LTV, Lifetime Value)’ 분석이었다.
알렉스는 P&G의 마케팅 책임자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광고를 통해 발생한 ‘첫 번째 구매’에만 집중해왔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고객은 한 번 구매하고 끝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브랜드에 충성심을 갖고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각 광고 플랫폼이 어떤 종류의 고객을 데려오고 있는지를 분석해야 합니다.”
P&G는 알렉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구글과 아톰 AI를 통해 유입된 신규 고객들의 익명화된 ID 목록을 제공했고, 알렉스의 팀은 이 고객들이 이후 6개월 동안 얼마나 자주 재구매를 하는지, 평균 구매 단가는 얼마인지를 추적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트리뷰션’의 개념을 한 번의 구매가 아닌, 고객의 전체 생애 주기로 확장하는 작업이었다.
몇 주 후, 분석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결의 판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알렉스는 분석 보고서를 들고 P&G의 의사결정권자들이 모두 모인 회의실에 섰다.
“여러분, 두 플랫폼이 데려온 고객들의 프로필은 매우 달랐습니다.”
그는 첫 번째 차트를 보여주었다.
[신규 고객 유입 채널 분석]
- 아톰 AI: 주로 가격 비교 사이트, 할인 쿠폰 커뮤니티, 모바일 게임 보상형 광고 등을 통해 고객을 유입시킴.
- 구글: 프리미엄 언론사의 뷰티 섹션, 전문 리뷰 사이트, 브랜드 키워드 검색 등을 통해 고객을 유입시킴.
“아톰 AI는 ‘가격 민감성 고객’을 주로 공략했습니다. 이들은 할인이나 최저가에 반응하여 구매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죠. 반면 저희는 ‘브랜드 및 품질 민감성 고객’에게 더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정적인 두 번째 차트를 띄웠다.
[6개월 후 고객 생애 가치(LTV) 분석]
- 재구매율: 구글을 통해 유입된 고객 그룹의 재구매율이 아톰 AI 그룹보다 40% 더 높게 나타남.
- 평균 구매 단가: 구글 그룹의 고객들이 재구매 시, 더 비싼 프리미엄 라인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을 보여 평균 구매 단가가 25% 더 높았음.
- 총 LTV: 이 두 가지 요소를 종합한 결과, 구글 그룹의 고객 1인당 생애 가치는 아톰 AI 그룹보다 75%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됨.
회의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알렉스는 결론을 맺었다.
“아톰 AI의 높은 초기 ROAS는, 단기적인 할인에 반응하는 고객들을 대거 유입시킨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회성 구매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저희는 조금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올레이라는 브랜드 자체의 가치를 신뢰하는 ‘진짜 팬’을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결국 P&G의 장기적인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 보고서는 아톰 AI의 ‘효율성’이라는 주장의 근간을 흔들었다. 그들의 효율성은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비효율’일 수 있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한 것이다.
P&G의 CMO는 자리에서 일어나 알렉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알렉스, 당신과 당신 팀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었소. 우리는 하마터면 반짝이는 숫자에 속아, 우리 브랜드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충성 고객’을 놓칠 뻔했군.”
이 LTV 분석 보고서는 ‘세기의 대결’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구글은 자신들의 ‘공생 모델’과 ‘브랜드 안전성’이라는 철학이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실제 비즈니스의 장기적인 성장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해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구글은 가장 중요한 고지, 즉 ‘가치의 증명’이라는 고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