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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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7월 03일

고객 생애 가치(LTV) 분석은 대결의 흐름을 완전히 구글 쪽으로 가져왔다. P&G는 공식적으로 구글의 플랫폼을 자신들의 ‘전략적 파트너’로 격상시켰고, 아톰 AI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었다. 1년간의 공개 실험이 끝났을 때, 시장은 구글의 완승을 선언했다.

팀은 마침내 길고 치열했던 전쟁에서 승리했다. 사무실은 오랜만에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찼다. 알렉스는 팀원들과 함께 샴페인을 터뜨리며 그동안의 노고를 자축했다. 그들은 단순히 경쟁에서 이긴 것이 아니었다. ‘책임감 있는 AI’와 ‘장기적 가치’라는 자신들의 철학이 시장에서 옳았음을 증명해냈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며칠 후. 알렉스는 데이비드와 함께 부사장 마리아 해먼드에게 최종 성과를 보고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마리아는 팀의 성과를 아낌없이 칭찬했다.
“정말 대단한 승리였습니다. 여러분은 회사의 자존심을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모두에게 큰 보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칭찬이 끝난 후, 그녀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알렉스, 데이비드. 우리가 아톰 AI를 이겼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톰 AI가 P&G 캠페인에서 사용했던 그 ‘저품질 매체’들이, 사실은 우리 구글 광고 네트워크(GDN)에 속한 매체들이었다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알렉스와 데이비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녀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톰 AI는 자체적인 광고 네트워크가 없었다. 그들은 구글이나 다른 회사들이 구축한 광고 거래소를 통해 광고 지면을 구매하는 DSP였다. 즉, 그들이 올레이 광고를 노출시켰던 수많은 가십 사이트와 모바일 게임 앱들은, 대부분 구글의 시스템에 파트너로 등록된 매체들이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냉정하게 현실을 지적했다.
“우리는 지금 ‘우리 AI는 좋은 매체에만 광고를 내보내도록 잘 가르쳤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애초에 우리 네트워크에 왜 그렇게 많은 저품질 매체들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톰 AI는 단지 우리 시스템의 허점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했을 뿐입니다.”

그녀의 말은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던 알렉스의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그것은 ‘승자의 저주’였다. 그들은 눈앞의 경쟁자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구축한 생태계 자체의 어두운 이면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구글 광고 네트워크는 ‘개방성’을 원칙으로, 가능한 한 많은 웹사이트와 앱 개발자들이 참여하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었다. 이 개방성은 생태계 성장의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저품질 매체들이 난립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데이비드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P&G가 지불한 광고비의 일부는 아톰 AI를 거쳐, 우리 네트워크에 속한 저품질 매체사들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뜻이군요. 우리가 한 손으로는 브랜드 안전성을 외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그 기반을 흔드는 매체사들에게 수익을 나눠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모순적인 상황은 팀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이제 그들은 광고주의 캠페인을 최적화하는 것을 넘어, 광고가 노출되는 ‘지면의 품질’ 자체를 관리하고 개선해야 했다.

알렉스의 ‘차세대 광고 플랫폼 팀’은 ‘네트워크 품질 개선 TF’와 협력하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품질 평가 알고리즘: AI를 이용해 수백만 개의 파트너 웹사이트와 앱의 콘텐츠 품질, 광고 배치 방식, 사용자 행동 패턴 등을 분석하여 ‘품질 점수(Quality Score)’를 매기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 동적 가격 책정: 품질 점수가 높은 매체사의 광고 지면은 경매에서 더 높은 최저 입찰가를 적용받게 하여 더 많은 수익을 얻게 하고, 품질이 낮은 지면은 점진적으로 도태되도록 유도하는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했다.
  • 투명성 리포트: 광고주에게 자신들의 광고가 정확히 어떤 웹사이트와 앱에 노출되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리포팅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알렉스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플랫폼 사업자의 무거운 책임을 다시 한번 통감했다. 단순히 시장을 만들고 중개하는 것을 넘어, 그 시장의 모든 참여자들이 건전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화하고, 규칙을 개선하며, 생태계 전체의 건강을 책임져야만 했다.

세기의 대결은 끝났지만,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것은 외부의 적과의 싸움이 아닌, 자신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자기 자신과의 영원한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