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의 산, 코드 속의 진실

83

발행일: 2025년 07월 10일

반독점 소송은 회사를 거대한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알렉스의 팀은 새로운 기술 개발을 잠정 중단하고, 법무팀을 지원하는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 개시 절차)’ 대응에 전면 투입되었다.

그들의 일과는 완전히 바뀌었다. 수십 명의 변호사들이 사무실에 상주하며, 엔지니어들과 함께 과거의 기록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법무부가 요구한 자료는 상상을 초월했다. 수백만 건의 이메일, 수만 페이지의 내부 설계 문서, 그리고 광고 시스템의 핵심 소스 코드까지.

알렉스는 이 거대한 ‘증거의 산’ 속에서, 법무부의 주장을 반박할 ‘진실’을 찾아내는 기술 총괄 역할을 맡았다.

첫 번째 쟁점은 ‘애드 익스체인지의 경매 방식이 구글에게 유리하게 조작되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법무부는 ‘프로젝트 베르난케(Project Bernanke)’라는 구글 내부 프로젝트를 지목하며, 구글이 자신들의 광고 구매 플랫폼(DSP)에게 경쟁사보다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여 낙찰 가능성을 높였다고 주장했다.

알렉스는 데이비드, 사라와 함께, 프로젝트 베르난케의 실제 소스 코드를 분석하며 변호사들에게 그 기술의 본질을 설명해야 했다.

“이것은 조작이 아닙니다. 효율성 개선을 위한 시도였습니다.”

알렉스는 화이트보드에 경매 과정을 그리며 설명했다.
“과거에는, 저희 DSP도 다른 모든 DSP와 마찬가지로, 매 경매마다 실시간으로 입찰가를 계산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컴퓨팅 자원을 소모하는 일이었죠. 프로젝트 베르난케의 핵심은, 과거의 방대한 입찰 데이터를 분석하여, 특정 경매에서 굳이 비싼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될 경우를 미리 예측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지면의 과거 평균 낙찰가가 1달러였다면, 굳이 5달러로 입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시스템이 미리 아는 겁니다. 이를 통해 저희 DSP의 운영 비용을 절감하고, 그 절감된 비용의 일부를 광고주에게 돌려주거나, 매체사에게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것은 결국 생태계 전체의 효율을 높이는 혁신이었습니다.”

변호사들은 그의 기술적인 설명을 법률적인 언어로 바꾸어 반박 자료를 준비했다. 알렉스는 엔지니어의 논리가 어떻게 법정의 논리로 번역되는지를 지켜보며,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접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두 번째 쟁점은 ‘오픈 비딩(Open Bidding)’이 과연 공정한 경쟁을 보장했는가 하는 문제였다. 법무부는 오픈 비딩 역시 구글이 헤더 비딩 경쟁을 무력화시키고, 결국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려는 교묘한 전략이었다고 주장했다.

알렉스는 오픈 비딩 시스템의 서버 로그와 아키텍처 설계 문서를 증거로 제시했다.
“로그를 보시면 명확합니다. 오픈 비딩에 참여한 경쟁 SSP들의 입찰가는, 저희 애드 익스체인지 내부의 다른 입찰가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단 한 번의 차별도 없이 공정하게 경쟁했습니다. 저희는 경쟁사들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희는 서버-투-서버 연동 방식을 통해, 사용자의 브라우저에서 여러 번 네트워크 요청이 일어나던 기존 헤더 비딩의 단점, 즉 ‘페이지 로딩 속도 저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것은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의 하루는 코드와 법률 문서 사이를 오가는 것으로 채워졌다. 낮에는 변호사들과 함께 수년 전의 이메일을 분석하며 당시의 의사결정 배경을 복기했고, 밤에는 소스 코드 저장소(Repository)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특정 기능이 추가되었던 바로 그 시점의 코드 변경 내역(Commit Log)을 찾아내어 개발자의 의도를 증명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알렉스는 자신이 무심코 남겼던 코드 주석 하나, 동료와 나눴던 기술 토론 이메일 한 통이 얼마나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 Note: 이 로직은 특정 DSP에 유리하게 작동해서는 안 되며, 모든 참여자에게 공정해야 함.

과거의 자신이 남긴 이 한 줄의 주석이, 이제 와서 팀의 순수한 의도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도 했다.

알렉스는 이 거대한 증거의 산을 탐험하며, 자신들이 걸어온 길이 결코 부끄럽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들의 모든 코드는 더 나은 기술, 더 효율적인 시스템, 더 공정한 시장을 만들려는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문제는, 이 복잡한 기술적 진실을, 법정의 판사와 배심원들이 과연 이해하고 믿어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진실을 아는 것과, 그 진실을 증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길고 지루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