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와의 재회, 그리고 새로운 시작
제89화
발행일: 2025년 07월 13일
법정에서의 승리와 성공적인 조직의 세대교체. 알렉스는 마침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오랜만에 긴 휴가를 떠났다. 그는 모든 것을 잊고 캘리포니아의 해변을 거닐며 지난 세월을 정리했다.
휴가에서 복귀한 첫날, 그의 책상 위에는 뜻밖의 초대장이 놓여 있었다.
“오랜 친구와의 저녁 식사. 옛날이야기, 그리고 미래 이야기.”
보낸 사람은 사라 킴이었다. 그녀는 이제 구글 클라우드 사업부 전체를 이끄는 수석 부사장(SVP)이 되어,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 중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약속 장소는 팰로앨토의 한적한 레스토랑이었다. 알렉스가 도착했을 때, 사라는 이미 창가에 앉아 와인을 음미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의 예리한 눈빛과 단단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부사장님, 너무 늦었습니까?” 알렉스가 농담을 건네며 맞은편에 앉았다.
“알렉스, 자네까지 그러면 곤란하지.” 사라가 웃으며 받아쳤다. “밖에선 어쩔 수 없지만, 우리끼리는 그냥 사라, 알렉스라고 하자고. 옛날처럼.”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가 걸어온 길을 가늠하듯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밤을 함께 새웠던 동료, 때로는 스승과 제자였던 두 사람은, 이제 각자의 영역에서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되어 다시 마주 앉았다.
사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의 연대기, 정말 잘 읽었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치열하더군. 우리가 정말 그런 시간들을 함께 통과해왔다니.”
“사라가 없었다면 시작도 못 했을 이야기죠.” 알렉스가 진심으로 말했다. “처음 제가 왔을 때, ‘우리는 인터넷의 혈액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하셨던 말,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말이 제 모든 여정의 나침반이 되어주었어요.”
두 사람은 옛날이야기를 나누었다. 1200ms의 지연 시간과 싸우던 밤, 크리테오의 공습에 맞서 다이내믹 리타겟팅을 개발하던 순간, GDPR의 공포 앞에서 함께 밤을 새우던 기억들. 모든 것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했다.
음식이 나오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미래로 넘어갔다.
“그래서, 알렉스.” 사라가 물었다. “광고의 세계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건가? 쿠키 너머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 것 같아?”
알렉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했다.
“저는 궁극적으로 ‘광지능(Ad Intelligence)’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광고 ‘기술’이 아니라, 광고 ‘지능’이 핵심이 되는 시대죠. 사용자가 무언가를 필요로 하기도 전에, AI가 그의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가장 적절한 순간에, 가장 유용한 정보와 제안을 ‘광고의 형태’로 제공해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캘린더에 ‘주말 하이킹 약속’이 있고, 날씨 앱 데이터에 ‘주말에 비 예보’가 있다면, AI는 그에게 ‘방수 등산화 20% 할인’ 정보를 푸시 알림으로 보내주는 거죠. 이건 더 이상 방해하는 광고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여주는 ‘개인 비서’에 가까운 서비스가 될 겁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용자의 완벽한 통제와 명시적인 동의하에서 이루어져야만 하겠죠.”
사라는 그의 비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로운 관점이네. 결국 광고와 정보, 서비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거군. 클라우드의 미래도 비슷해. 우리는 더 이상 기업에게 단순히 저장 공간과 컴퓨팅 파워를 빌려주는 것을 넘어, 그들의 비즈니스 문제 자체를 해결해주는 ‘지능형 인프라’를 제공해야 해. 그들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안해주고, 비효율을 개선해주는 AI 파트너가 되어야 하지.”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미래는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고 있었다. 기술이 보이지 않는 배경이 되고, 그 위에서 AI라는 지능이 사용자와 기업을 위해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세상.
식사가 끝날 무렵, 사라가 알렉스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알렉스, 혹시… 새로운 도전에 관심 있나?”
“네?”
“자네의 연대기는 광고의 역사에서 끝났지만, 구글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어. 그리고 다음 시대의 가장 큰 도전과 기회는, 자네가 말한 그 ‘지능’을 모든 산업에 적용하는 것, 즉 클라우드와 AI의 결합에 있어. 나는 그 도전을 이끌 리더가 필요하네. 광고의 세계를 넘어, 더 넓은 세상의 문제를 함께 풀어보지 않겠나?”
사라의 제안은 알렉스의 심장을 강하게 두드렸다. 그는 평생을 광고 기술이라는 한 우물만 파왔다. 하지만 그의 연대기가 끝난 지금, 어쩌면 새로운 연대기를 시작할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와인잔을 들어 사라의 잔에 가볍게 부딪혔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사라?”
그의 눈은 이미 새로운 호기심과 도전 의식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