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생태계, SKAdNetwork
제92화
발행일: 2025년 07월 14일
애플의 ATT 정책 발표는 iOS 앱 개발자들과 광고 업계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IDFA라는 유일한 나침반을 잃어버린 채, 그들은 망망대해에 표류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애플은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그들은 혼란에 빠진 시장에 ‘애플만의 방식’으로 설계된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복잡하며, 애플의 통제하에 있는 기술이었다.
그 기술의 이름은 ‘SKAdNetwork’였다.
레오가 이끄는 광고 지능 팀은 이 낯선 기술의 명세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구글의 프라이버시 샌드박스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난해했다.
팀의 모바일 전문 엔지니어가 분석 결과를 공유했다.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이것은… 우리가 알던 광고 성과 측정 방식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모든 것이 애플의 규칙 안에서, 애플의 중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는 SKAdNetwork의 기이한 작동 방식을 설명했다.
- 제한된 정보: 광고를 클릭하고 앱을 설치했을 때, 광고 네트워크(구글 등)는 어떤 사용자가 어떤 광고를 통해 설치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실시간 정보를 받을 수 없다.
- 애플의 중개: 대신, 광고 클릭 정보와 앱 설치 정보는 모두 사용자의 기기에서 애플의 서버로 직접 전송된다. 애플이 이 모든 정보의 유일한 중개자가 되는 것이다.
- 지연되고 집계된 보고: 애플 서버는 이 정보들을 즉시 광고 네트워크에 전달하지 않는다. 최소 24시간에서 48시간을 기다린 뒤,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여러 데이터를 한데 묶어 ‘집계된’ 형태로 전달한다. (예: ‘어제 당신의 캠페인 A를 통해 대략 50~60명 사이의 사용자가 앱을 설치했습니다.’)
- 6비트의 전환 값: 설치 이후 사용자가 앱 내에서 어떤 행동(예: 회원가입, 구매)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고작 ‘6비트(bit)’ 크기의 데이터, 즉 0부터 63까지의 숫자 중 하나로만 표현하여 전달할 수 있다. 광고주는 이 숫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예: 1=회원가입, 2=첫 구매) 사전에 정의해야만 한다.
팀원들은 그 설명을 듣고 경악했다.
“실시간 데이터가 아니라고요? 하루나 이틀 뒤에야 결과를 알 수 있다니요?”
“정확한 숫자도 아니고, 대략적인 범위로만 알려준다고요?”
“사용자의 모든 인앱 행동을 고작 64개의 숫자 중 하나로 표현해야 한다니… 이건 마치 21세기에 봉화로 통신하라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것은 구글이 추구해온 실시간, 세분화, 투명성과는 정반대의 철학이었다. 모든 것이 애플의 블랙박스 안에서, 그들의 통제하에, 극도로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하는 방식.
레오는 이 기술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이것은 단순한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애플이 자신들의 iOS 생태계 안에서, 데이터의 흐름을 완벽하게 통제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그들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다른 광고 플랫폼들이 자신들의 정원 안에서 너무 많은 정보를 얻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겁니다.”
SKAdNetwork는 기술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선언에 가까웠다. 애플은 이 기술을 통해 광고 성과 측정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OS의 일부로 흡수하고, 그 영역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었다.
이제 팀의 과제는 명확해졌다. 좋든 싫든, iOS에서 광고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이 지극히 불편하고 제한적인 SKAdNetwork를 지원하도록 구글의 모든 광고 측정 시스템을 수정해야만 했다.
엔지니어들은 불평을 쏟아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제약 속에서 어떻게 광고 캠페인을 최적화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레오는 팀을 다독였다. 그의 모습에서는 어느덧 과거 알렉스의 리더십이 엿보였다.
“어렵다는 것 압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봅시다. 이 제한된 6비트의 신호를 어떻게 하면 가장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지연된 집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떻게 캠페인 성과를 ‘예측’하는 머신러닝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봅시다.”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기술을 낳았습니다. 쿠키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프라이버시 샌드박스를 상상해냈습니다. 이제 IDFA가 사라진 이 자리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혁신을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팀의 존재 이유입니다.”
레오의 말에, 팀원들의 눈빛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불평만 하고 있지 않았다. 대신, 이 새로운 제약 조건이라는 까다로운 퍼즐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기술적인 토론을 시작했다.
그들은 애플이 세운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하는 대신, 그 벽을 오르기 위한 가장 정교한 로프와 갈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광고 지능 팀의 새로운 연대기는, 가장 혹독한 환경 속에서 가장 창의적인 해법을 찾아내는 그들의 처절한 생존 기록으로 채워져 나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