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자 데이터 연합의 역습
제94화
발행일: 2025년 07월 15일
애플의 ATT 정책은 구글에게만 위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페이스북에게는 훨씬 더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페이스북의 광고 사업 모델은 iOS 앱 생태계 전반에서 수집한 정교한 사용자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IDFA가 무력화되자, 그들의 자랑이었던 타겟팅 능력과 성과 측정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모두가 애플이 세운 높은 벽 앞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시장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1자 데이터 연합’의 부상이었다.
이 움직임의 중심에는 대형 유통사, 언론사, 그리고 통신사 같은, 자체적으로 대규모 로그인 사용자와 풍부한 1자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들이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에만 의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레오가 이끄는 광고 지능 팀은 이 새로운 흐름을 예의주시했다.
팀의 데이터 파트너십 담당자가 회의에서 보고했다.
“최근 월마트와 디즈니, 그리고 통신사인 AT&T가 데이터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각 사가 보유한 1자 데이터를, 사용자의 동의하에, 안전한 환경에서 결합하여 공동의 광고 상품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들의 시나리오는 구체적이고 강력했다.
- 월마트는 ‘최근 유아용품을 구매한 고객’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 디즈니는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를 통해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자주 시청하는 가구’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 AT&T는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4인 가족 요금제 사용 고객’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이 세 데이터를 결합하면,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어린 자녀를 둔, 유아용품 구매력이 높은 가구’라는, 페이스북 못지않은 매우 정교한 타겟 그룹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타겟 그룹에게 디즈니랜드 가족 여행 패키지나, 월마트의 장난감 할인 광고를 직접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것은 과거 구글이 시도했던 ‘제3자 데이터’ 전략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불투명한 데이터 브로커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도 높은 대형 브랜드들이 사용자의 명시적인 동의를 기반으로 직접 손을 잡는 방식이었다.
레오는 이 연합의 움직임에서 구글이 놓쳤던 기회와 다가올 위협을 동시에 보았다.
“결국, 애플이 모든 외부 연결고리(IDFA)를 끊어버리자, 각각의 섬(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만의 튼튼한 다리(데이터 파트너십)를 놓기 시작한 거군요. 문제는, 이 다리들이 구글을 거치지 않고, 그들끼리 직접 연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이 기업들이 구글의 DMP나 데이터 클린룸 같은 기술을 통해 데이터를 활용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구글의 생태계를 벗어나, The Trade Desk의 UID 2.0 같은 독립적인 ID 솔루션과, 스노우플레이크(Snowflake) 같은 중립적인 데이터 클라우드 위에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광고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었다.
구글은 ‘선택지’가 될 뿐,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세상이 오고 있었다.
이 위기감 속에서, 팀은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만 했다.
한 프로덕트 매니저가 의견을 냈다.
“우리가 그들의 연합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연합이 더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가진 최고의 기술을 ‘서비스 형태’로 제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설명 가능한 AI(XAI)’ 엔진을 API 형태로 제공하여, 월마트-디즈니 연합이 자신들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새로운 고객 통찰력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그것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구글의 플랫폼 ‘안에서’만 데이터를 활용하게 하는 대신, 구글의 ‘지능’ 자체를 외부로 수출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레오는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맞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모든 데이터를 우리 쪽으로 가져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우리의 머신러닝 모델, 어트리뷰션 엔진, 개인정보 보호 기술들을 각각의 독립된 서비스처럼 모듈화하여, 기업들이 필요한 부품만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 walled garden’이 아니라, ‘기술의 레고 블록 공장’이 되어야 합니다.”
팀의 방향은 다시 한번 수정되었다. 단일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구글의 핵심 기술들을 독립적인 서비스로 분리하고, 어떤 데이터 환경에서도 쉽게 연동될 수 있도록 개방적인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애플이 촉발한 고립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기업들 간의 새로운 합종연횡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구글은 이 새로운 질서 속에서, 중앙의 지배자가 아닌, 가장 유능하고 개방적인 ‘기술 파트너’로서 자신의 가치를 다시 증명해야 하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