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노장의 뒷모습

992025년 07월 18일4

레오의 기조연설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컨퍼런스 뒤풀이 파티는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레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알렉스는 조용히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그의 옆에는 어느새 데이비드 첸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이제 광고 사업부 사장 자리에서도 물러나, 회사의 신기술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털 부문에서 명예직을 맡으며 유유자적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뉴욕의 밤거리를 걸었다. 수많은 디지털 광고판이 화려한 빛을 뿜어내며 도시를 밝히고 있었다. 그 광고판의 대부분이, 바로 두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한 프로그래머틱 기술로 실시간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레오, 정말 대단하지 않나?” 데이비드가 먼저 침묵을 깼다. “우리가 상상만 하던 것들을, 저 친구는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더군. 이제 우리의 시대는 정말로 끝난 것 같아 섭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네.”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레오는 저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세상을, 더 현명하게 이끌고 있습니다. 이제 저 같은 낡은 세대는 뒤에서 조용히 박수만 쳐주면 되는 거겠죠.”

두 사람은 한적한 바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바텐더에게 위스키를 주문한 데이비드가, 문득 진지한 표정으로 알렉스에게 물었다.

“알렉스, 자네가 쓴 그 연대기 말이야. 나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나 다시 읽었네. 우리가 정말 많은 일을 했더군.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가 정말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자신할 수 있겠나?”

그것은 데이비드 같은 노장만이 던질 수 있는, 깊고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알렉스는 잠시 위스키 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분명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를 지탱하는 경제적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수많은 창작자들이 콘텐츠를 만들고, 사용자들이 무료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파는 비즈니스를 만들었고, 프라이버시에 대한 논란을 낳았으며, 가짜뉴스가 퍼지는 토양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화려한 성공 뒤에 가려진, 리더로서의 깊은 고뇌가 묻어 있었다.

“우리는 항상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효율을 자동화하고, 불투명함을 투명하게 만들고, 위험을 통제하려 했죠. 하지만 우리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 해결책은 또 다른 새로운 문제를 낳았습니다. 기술의 발전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벽한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문제의 연쇄 고리 속에서, 더 나은 균형점을 찾아가는 영원한 과정 말입니다.”

데이비드는 알렉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알렉스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세상을 ‘더 좋게’ 만들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이것 하나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더 흥미로운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수많은 문제와 질문, 그리고 가능성들을 세상에 던져놓았죠.”

“그리고 이제 레오와 같은 다음 세대들이, 우리가 던져놓은 그 문제들을, 우리보다 더 현명한 방식으로 풀어갈 거라고 믿습니다. 어쩌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요? 우리의 역할을 다하고,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질문을 남겨주는 것 말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길고 깊은 침묵이 흘렀다. 위스키 잔을 부딪치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데이비드는 창밖의 화려한 광고판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알렉스. 우리는 우리의 싸움을 끝냈고, 이제는 그들의 싸움을 지켜볼 시간이야.”

그의 얼굴에는 모든 짐을 내려놓은 자의 편안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알렉스 역시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두 노장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평생을 바쳐 만들어온,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만, 여전히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세상의 풍경을, 조용히 위스키 잔에 담아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시대는, 그렇게 아름답게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