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의 칼날
제12화
발행일: 2025년 05월 13일
양자컴퓨터의 냉각 팬이 내는 저음의 허밍 소리만이 가득한 연구실. 릴리 리브스는 모니터 앞에 앉아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화면 속에서 격렬하게 요동치는 데이터 스트림을 쫓고 있었고, 창백한 얼굴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옆에는 가브리엘 머서 교수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프로젝트 오디세우스’. 그 이름은 이제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죽음과 연결된, 어쩌면 인류의 운명과도 얽혀 있을지 모르는 거대한 비밀의 입구였다. 릴리는 그 문을 열어야만 했다.
“준비됐니, 릴리?” 머서 교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격려와 함께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이 묻어났다.
릴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양자 알고리즘을 가동시켰다. 목표는 수십 년 동안 봉인된 오디세우스 프로젝트의 숨겨진 데이터 아카이브. 정부의 최고 등급 기밀, 철벽같은 양자 암호화로 보호받고 있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화면 속에서 확률의 파동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릴리의 알고리즘은 무수한 가능성의 갈래로 나뉘어 아카이브의 방화벽을 탐색했다. 마치 수백만 개의 열쇠를 동시에 자물쇠 구멍에 꽂아 돌리는 것처럼, 양자적 중첩 상태를 이용해 암호화된 경로를 우회하려는 시도였다. 시간이 멈춘 듯한 긴장감이 연구실을 감쌌다.
‘거의 다 됐어…’
알고리즘이 마침내 방화벽의 약점을 포착하고, 데이터 스트림의 일부가 해독되기 시작했다. 깨진 거울 조각처럼, 암호화된 기록의 파편들이 화면 위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릴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파편들을 조합하려 애썼다.
마침내, 의미 있는 정보의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오디세우스 프로젝트 - 최종 임무 브리핑]
목표: 좌표 XXX-XXX-XXX 지점의 ‘공간 이상 현상’ 정밀 조사. 외계 지성 탐사 가능성 포함. 대상의 ‘관측 반응성’에 대한 데이터 수집 최우선.
릴리는 숨을 삼켰다. 외계 지성 탐사가 아니라, 특정 '이상 현상' 조사가 진짜 목적이었다. 그리고… ‘관측 반응성’? 아버지의 이론과 섬뜩하게 맞아떨어지는 단어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다음 데이터 블록을 해독했다. 그것은 프로젝트의 마지막, 비극적인 교신 기록의 전체 내용이었다.
[오디세우스 최종 교신 기록 - 전문]
“통제실, 여기는 오디세우스. 좌표 지점 도착. 에너지 수준 안정적…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센서에 잡히는 질량값이… 예측 범위를 훨씬 벗어난다. 마치… 이 공간 전체가…”
(잡음)
“이럴 수가… 거대해… 앞쪽에… 형체가 보인다. 하지만… 빛을 흡수하고 있어. 윤곽만… 아니, 이건… 이건 구조물이 아니야! 움직여! 살아있다고!”
(격렬한 경고음)
“통제실! 듣고 있나! 저것은… 우리를 보고 있다! 명백하게 우리를 인식하고 있어! 센서 오류가 아니다! 이건… 아아악! 함선 내부로… 무언가가… 안 돼!”
(비명 소리)
“이것은 함선이 아니라… 거대한… 눈이다! 눈!!! 수천 개의 눈이 우리를… 안 돼! 아아아악!”
(통신 완전 두절)
릴리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듯한 공포. 거대한 눈. 그것이 어머니가 남긴 좌표에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곳으로 향했던 탐사선은… 그 눈에게 삼켜진 것인가?
“맙소사…” 옆에 서 있던 머서 교수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신음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눌렀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듯, 그의 눈동자는 극도의 공포로 흔들리고 있었다. “안 돼… 릴리, 당장 멈춰!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너무 위험해!”
머서 교수는 거의 반사적으로 릴리의 어깨를 붙잡고 시스템 종료 버튼을 누르려 했다. 그의 다급함 속에는 단순한 걱정을 넘어선, 본능적인 공포가 서려 있었다.
런던 MI6 본부 지하.
빅터 할로우는 자신의 보안 단말기 화면을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에단 리브스와 릴리 리브스에 대한 최신 감시 보고서가 올라와 있었다. 에단의 불안정한 행동 패턴, 올리비아 첸과의 비밀스러운 접촉, 그리고 릴리 리브스가 대학 연구실에서 접근하고 있는 데이터의 종류와 그녀가 오디세우스 프로젝트와 관련된 특정 우주 좌표에 비정상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할로우의 입가에 희미하고 냉소적인 미소가 걸렸다. “거대한 눈이라…” 그는 보고서의 특정 부분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흥미롭군.”
그에게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과학 연구가 아니었다. 잠재적인 외계 위협, 혹은 상상을 초월하는 미지의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어느 쪽이든, 영국의 국익을 위해 철저히 통제하고 이용해야 할 대상이었다.
“리브스 부녀에 대한 감시 등급을 최상위로 격상시켜. 모든 통신 내역, 연구 데이터, 접촉 인물 전부 보고하도록. 특히 그 ‘좌표’와 관련된 모든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보고해.” 할로우는 부하에게 냉정하게 명령했다. 그의 눈빛은 사냥감을 포착한 매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이 불확정성의 칼날 위에서, 위험한 도박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릴리와 머서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들이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가 우주적 존재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의 가장 어두운 권력까지 자극했다는 사실을. 연구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 보이지 않는 위협의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