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힘의 첫 번째 피
제13화
발행일: 2025년 05월 14일
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준 ‘오디세우스 프로젝트’의 마지막 기록. 그것은 에단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망령처럼 맴돌았다. ‘거대한 눈’. ‘우리를 보고 있다’. 수십 년 전 사라진 탐사선의 마지막 비명은 그의 이론과 섬뜩하게 공명하며 끔찍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좌표 XXX-XXX-XXX. 그곳에는 무언가가 있다.
인간의 ‘관측’ 행위에 반응하는, 어쩌면 지성을 가진 거대한 외계 존재. 그것이 그의 이론이 가리키는, 그리고 사만다의 죽음과 연결된 진실의 심장부일지도 몰랐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만다의 악몽 속 경고가 귓가에 생생했다. 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알아야만 했다.
“한 번 더… 이번엔 확실하게.”
에단은 핏발 선 눈으로 개량된 양자 감응 센서를 노려보았다. 엘라나의 도움과 MI6의 부품 지원으로 성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다. 그는 센서의 냉각 시스템을 최대로 가동하고, 에너지 공급 장치의 안전 제한 장치를 해제했다. 미친 짓이었다. 기계가 폭주하거나 과부하로 터져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그 저주받은 좌표를 입력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출력 증폭 레버를 끝까지 밀어 올렸다.
콰아아아앙-!
연구실의 모든 조명이 터질 듯이 밝아졌다가 일순 암전되었다. 센서에서 터져 나온 강력한 양자 파동이 공간 자체를 뒤흔드는 듯,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기계 중심부의 크리스탈은 눈을 멀게 할 듯한 격렬한 빛을 뿜어냈고, 과부하를 알리는 경고음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모니터 화면.
이전의 미약한 요동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거대한 존재가 포효하듯, 폭발적인 에너지 반응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패턴의 인공 신호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단일한 신호가 아니었다. 수백, 수천 개의 신호가 중첩되고 얽혀 만들어내는 거대한 교향곡, 혹은 전쟁의 함성과 같았다.
“이… 이건…!”
에단은 압도적인 정보의 폭풍 앞에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그의 센서는 단순히 신호를 감지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잠자던 거인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 깨운 것과 같았다. 그는 자신의 관측 행위가 돌이킬 수 없는 방아쇠를 당겼음을 직감했다.
바로 그 순간.
대학 캠퍼스, 양자컴퓨팅 연구실.
릴리는 머서 교수와 함께 오디세우스 프로젝트의 데이터를 분석하며 밤을 새우고 있었다. 머서 교수는 릴리가 발견한 정보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연구 중단을 간곡히 설득했지만, 릴리는 진실을 향한 갈망을 멈출 수 없었다.
“교수님, 이것 좀 보세요. 좌표 주변의 중력 렌즈 효과가… 일반적인 암흑물질 분포로는 설명이 안 돼요. 마치… 질량을 가진 거대한 투명 구조물이 있는 것처럼…” 릴리가 새로운 발견에 흥분하며 교수를 불렀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교수님?” 릴리가 고개를 돌렸다.
머서 교수는 자신의 책상 앞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등에는 날카로운 단검 같은 것이 깊숙이 박혀 있었고, 바닥에는 검붉은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그의 눈은 공포와 불신으로 크게 뜨여 있었지만, 이미 생명의 빛은 사라진 뒤였다.
“아… 아아… 안 돼… 교수님!!!”
릴리의 비명이 연구실의 적막을 갈랐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교수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눈앞의 끔찍한 광경이 현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너무 몰두했던 탓일까? 릴리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 했다. 하지만 머서 교수가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머서 교수의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 그리고 오디세우스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연구 자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이것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었다. 명백한 경고이자, 입막음이었다.
릴리는 스승의 싸늘한 시신 앞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엄청난 충격과 슬픔, 그리고 자신 때문에 스승이 죽었다는 끔찍한 죄책감이 그녀의 영혼을 짓눌렀다. 그녀는 너무 깊이 와버렸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건너버린 것이다.
먼 우주, 혹은 다른 차원.
레이셀은 자신의 단말기에 떠오른 확인 메시지를 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정화 작업 1단계 완료. 목표 가브리엘 머서 제거. 관련 데이터 소거 완료.'
에단 리브스의 무모한 관측 행위. 릴리 리브스의 위험한 해킹 능력. 저 저급한 유기체들은 자신들이 건드려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에크릴 님의 우유부단함이 결국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레이셀은 에크릴의 승인 따위는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첫 번째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인류라는 위험한 바이러스는 뿌리 뽑아야 마땅했다. 특히 저 어린 암컷, 릴리 리브스는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최우선 목표였다. 그녀의 잠재력은 너무나 위험했다.
레이셀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갑게 빛났다. 다음 목표는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