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치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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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5월 18일

엘라나의 경고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그날 밤부터 안전가옥 주변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현상들이 미미하지만 집요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속적으로 발생하는 미세한 에너지 교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시설의 센서들을 건드리는 듯, 감지 시스템의 데이터가 순간적으로 왜곡되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밤하늘에는 식별 불가능한 초소형 비행 물체가 레이더망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지나갔고, 외벽 감시 카메라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희미한 그림자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했다.

"이건… 명백한 정찰 및 교란 시도입니다."

MI6 기술팀의 분석 결과는 할로우의 표정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범인은 누구인가? 머서 교수를 살해한 그 세력? 아니면 또 다른 제3의 존재? 분명한 것은, MI6의 자랑이던 최첨단 안전가옥이 더 이상 철옹성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외부의 위협은 이미 문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젠장,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다는 거지?"

에단은 답답함에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MI6의 삼엄한 통제는 숨 막혔고, 연구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머서 교수의 죽음과 사만다의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은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그는 이대로 갇혀 시간만 허비할 수는 없었다. 그의 눈빛에는 초조함과 함께, 위험한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불길한 빛이 감돌았다.

릴리는 아버지 옆에서 조용히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 대신 차가운 분노와 복수심이 이글거렸다. 스승을 죽인 자들, 그리고 어쩌면 어머니까지 앗아갔을지도 모르는 존재들.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고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MI6의 제한된 자원과 통제 아래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그때, 코바치의 제안이 악마의 속삭임처럼 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안 돼요! 에단, 릴리! 그 남자는 위험해요!” 올리비아가 절박하게 외쳤다. 그녀는 밤새 조사한 코바치의 어두운 과거와 극단적인 사상에 대해 다시 한번 경고했다. “그는 당신들을 돕는 게 아니라 이용하려는 거예요! 그의 시설로 들어가는 건 호랑이 굴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하지만 에단과 릴리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은 때로 가장 위험한 선택지를 유일한 희망처럼 보이게 만드는 법이었다. 코바치가 약속한 최첨단 양자 컴퓨터, 에단의 차세대 센서 제작에 필요한 무한한 자원… 그것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어쩌면 복수를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엘라나는 이 모든 논쟁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평소처럼 냉정하고 무심했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코바치는 분명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의 야심과 기술력은 예상보다 훨씬 위협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를 가까이에서 감시하고 그의 기술 수준과 진짜 목적을 파악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레이셀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류의 잠재력을 이용하려 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변수. 그녀는 에단이나 올리비아처럼 감정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에 더 부합했다.

“결정해야 합니다.” 빅터 할로우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차갑고 단호했다. “현재로서는 코바치 회장의 제안이 유일한 대안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지.”

그는 코바치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MI6 정예 요원 팀의 동행 및 상주, 시설 내 모든 연구 데이터에 대한 실시간 접근 권한 확보, 그리고 에단과 릴리의 신변 안전에 대한 절대적인 보장. 코바치는 놀랍게도 이 모든 조건을 수락했다. 그의 여유로운 태도는 오히려 더 큰 의심을 불러일으켰지만, 할로우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결정됐습니다. 코바치 회장의 시설로 이동합니다.” 할로우가 최종적으로 선언했다.

올리비아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고, 에단과 릴리는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엘라나의 입가에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희미한, 의미심장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위험한 거래는 성사되었다. 그들은 이제 미지의 위협을 피해, 또 다른 거대한 위험 속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코바치의 강철 새장.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어둠 속으로 향하는 불안한 여정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