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 함수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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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5월 21일

시간은 강철 새장 안에서 기묘하게 흘러갔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오직 인공적인 빛과 통제된 공기만이 존재하는 지하 요새. 그 속에서 에단 리브스는 연구에 미친 듯이 몰두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언제나 엘라나가 있었다.

엘라나의 도움은 경이를 넘어 기이할 정도였다. 그녀는 에단이 직면한 기술적 난제를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너무나 완벽하고 우아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복잡한 양자 회로의 미세한 오류를 인간의 감각으로는 불가능할 방식으로 감지해내거나, 아직 학계에 발표되지도 않은 최신 이론을 바탕으로 설계 개선안을 내놓기도 했다.

"엘라나 박사, 대체 어떻게…?" 에단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물을 때마다, 그녀는 그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직관이 좀 좋은 편이라서요"라고 답할 뿐이었다. 그 직관은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것처럼 느껴졌지만, 에단은 그 의심을 애써 눌렀다. 그녀 덕분에, 차세대 '퀀텀 공명 센서'는 놀라운 속도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새로운 센서는 단순한 양자 요동 감지기를 넘어섰다. 초기 테스트 결과, 센서는 극도로 미세한 양자 파동의 패턴을 분석하여, 그 발신원의 복잡한 상태 정보, 심지어는 ‘의도’나 ‘감정 상태’까지 추론할 가능성을 보였다. 만약 이것이 정말 가능하다면, 그는 좌표 너머의 존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쇠를 쥐게 되는 것이었다.

“이 정도 정밀도라면…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도 있겠어…” 에단은 센서의 데이터 그래프를 보며 흥분과 두려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편, 릴리 역시 양자컴퓨터 앞에서 눈부신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 코바치의 기계가 제공하는 압도적인 연산 능력은 그녀의 천재성을 날개 돋친 듯 펼쳐나가게 했다. 그녀는 ‘빈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복잡한 네트워크 신호가 단순한 통신망이 아니라는 확신에 가까운 가설에 도달했다.

“이건… 거대한 ‘의식 집합체’일지도 몰라요.” 릴리는 옆에서 지켜보던 올리비아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화면에는 수많은 노드와 연결선이 복잡한 다차원 구조를 이루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뮬레이션이 펼쳐져 있었다. “단순히 정보를 교환하는 게 아니라… 여러 차원에 걸쳐 존재하며, 어쩌면 현실의 구조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녀의 가설은 너무나 대담하고 충격적이었지만, 데이터는 그 가능성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주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인류의 이해는 근본부터 뒤집혀야 했다.

바로 그때였다. 첫 번째 ‘사고’가 일어났다.

에단이 센서의 핵심 기능인 ‘의도 추론’ 알고리즘의 최종 테스트를 진행하려는 순간이었다. 센서 내부의 크리스탈 공명 주파수가 갑자기 불안정하게 요동치더니, 과부하 경고음과 함께 시스템 전체가 다운되어 버렸다. 센서는 순식간에 값비싼 고철 덩어리로 변했다.

“젠장! 뭐가 문제야!” 에단은 분노하며 시스템 로그를 확인했지만, 명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하드웨어 손상도, 소프트웨어 오류도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센서의 핵심 기능을 정확히 멈춰버린 것처럼.

비슷한 시각, 릴리의 양자컴퓨터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의식 집합체’ 가설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다차원 연결성 분석 시뮬레이션이 거의 완료되려는 찰나. 화면이 순간적으로 깨지면서 데이터 전체가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되었다는 오류 메시지가 떠올랐다. 수십 시간 동안 진행했던 연산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말도 안 돼…!” 릴리는 망연자실하게 화면을 바라보았다.

코바치 측 기술팀이 즉시 달려와 조사를 진행했지만, 결론은 ‘원인 불명의 시스템 오류’ 혹은 ‘양자적 노이즈로 인한 데이터 손상 가능성’이라는 애매한 답변뿐이었다. 코바치 역시 에단과 릴리를 찾아와 유감을 표하며, “첨단 기술에는 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라며 부드럽게 그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릴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너무나 공교로운 타이밍. 너무나 정확하게 핵심적인 순간에 발생한 ‘사고’들. 이것은 단순한 기술 결함이 아니었다. 의도적인 방해 공작. 그녀의 직감은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누구지? 코바치? 아니면… 시설 외부의 누군가?’

그녀의 시선이 복도 저편, 모든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엘라나에게 잠시 머물렀다. 엘라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릴리는 그녀의 눈빛 깊은 곳에서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차가운 만족감 같은 것을 본 것 같았다. 어쩌면 그녀가 이 모든 일의 배후일까? 아니면 최소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걸까? 릴리의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엘라나는 실제로 이것이 레이셀의 소행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단말기를 통해 레이셀이 코바치 시설의 보안 시스템을 교묘하게 우회하여, 특정 양자 파동 간섭을 통해 에단의 센서와 릴리의 컴퓨터를 교란시키는 것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개입하지 않았다. 이것 또한 인류의 반응을 관찰할 귀중한 데이터였고, 어쩌면 레이셀의 광기가 코바치라는 또 다른 위협을 견제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모든 가능성을 저울질하며, 차가운 관찰자의 역할을 유지했다.

코바치의 강철 새장 안에, 이제 단순한 감시와 심리적 압박을 넘어선 물리적인 방해 공작이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는 적의 손길이 그들의 연구를 교묘하게 가로막고 있었고, 의심과 불안의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릴리는 코바치와 엘라나, 그리고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를 제3의 세력까지 의심하며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파동 함수는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왜곡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