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의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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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5월 22일

강철 새장 안의 공기는 날이 갈수록 차갑게 식어갔다. 연구의 ‘사고’는 계속되었고, 릴리의 악몽은 더욱 잦고 강렬해졌다. 밤마다 들려오는 딸의 희미한 비명 소리는 에단의 얼마 남지 않은 이성마저 갉아먹고 있었다. 그는 센서 개발에 더욱 강박적으로 매달렸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는 듯한 무력감은 술로도 달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알렉산더 코바치가 ‘우려’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났다.

“리브스 박사님, 그리고 릴리 양.” 코바치는 특유의 부드럽고 신사적인 태도로 그들을 자신의 호화로운 집무실로 불렀다. “최근 두 분의 상태가 매우 염려됩니다. 박사님의 과도한 연구 몰두와… 릴리 양이 겪고 있는 심리적 불안정은 연구 진행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진심 어린 걱정보다는 상황을 통제하려는 계산적인 의도가 번뜩였지만, 그의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특히 릴리의 상태는 누가 봐도 심각했다. 다크서클은 턱밑까지 내려왔고,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작은 소리에도 움찔거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제가 특별히 한 분을 초빙했습니다.” 코바치가 손짓하자, 집무실 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한 여성이 안으로 들어섰다.

에단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닥터 미라 웰스. 런던에서 그를 상담했던 바로 그 정신과 의사였다. 그녀는 이곳의 인공적인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리브스 박사님, 다시 뵙게 되어 유감이네요. 이런 상황에서 말입니다.” 미라는 에단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긋나긋했고, 눈빛은 깊은 공감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

에단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런던에서의 상담. 그녀의 집요했던 질문들. 그는 그때 이미 그녀에게서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가 이곳에? 코바치가 불렀다고?

“박사님의 오랜 상담 의사이시니, 두 분의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겁니다.” 코바치가 에단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말했다. 그의 손길에는 거부할 수 없는 압력이 실려 있었다. “릴리 양을 위해서라도, 상담을 받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에단은 갈등했다. 미라에 대한 불신은 여전했지만, 릴리의 위태로운 모습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정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아니, 그보다 코바치의 제안을 거절했을 때 돌아올 불이익이 더 두려웠다.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에단은 마지못해 상담 세션을 수락했다. 미라 웰스와의 상담은 런던에서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그녀는 그의 연구 스트레스와 딸에 대한 걱정을 공감하는 척하며, 교묘하게 대화를 유도했다.

“최근 센서 개발은 순조로우신가요? 혹시… 특별히 주목할 만한 ‘패턴’이라도 발견하셨는지요?”
“릴리 양의 악몽은… 혹시 특정한 이미지나 ‘메시지’와 관련이 있을까요?”
“외부의 위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까지 파악하고 계신지요?”

그녀의 질문은 부드러운 장막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칼날처럼, 에단의 연구 진행 상황, 릴리의 능력, 그리고 그들이 가진 외계 존재에 대한 정보를 파고들었다. 에단은 최대한 방어적으로 대답했지만, 상담이 끝날 때쯤에는 진이 빠진 상태였다.

릴리 역시 상담을 피할 수는 없었다. 미라는 릴리의 트라우마를 부드럽게 건드리며 접근했지만, 릴리는 본능적인 경계심으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그녀의 눈빛은 미라의 가면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꿰뚫어 보려는 듯 날카로웠다. 미라는 릴리의 방어적인 태도에 당황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그녀의 반응과 미세한 에너지 변화를 관찰했다.

“코바치 저 인간, 대체 무슨 꿍꿍이야!” 올리비아는 미라 웰스의 등장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정신과 의사까지 끌어들여서 우리 정보를 캐내려는 속셈이 분명해! 저 여자, 뭔가 이상하다고!”

올리비아는 미라 웰스의 배경을 다시 조사하려 했지만, 코바치 시설의 철벽같은 정보 통제 속에서 그녀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녀의 공식적인 기록은 너무나 완벽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 시각, 시설의 다른 구역에서 엘라나는 복도를 걷다가 미라 웰스와 마주쳤다.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엘라나는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미라 웰스에게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에너지 시그니처. 그것은 분명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나 레이셀의 것과도 달랐다. 더 고대의, 혹은 완전히 다른 진화 계통에서 비롯된 듯한 이질적인 파동. 엘라나의 종족 기록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우주의 다른 구역을 관리하거나 혹은 경쟁하는 ‘다른 관리자’ 종족의 특징과 유사했다.

엘라나의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미라 웰스는 단순한 인간 정신과 의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다른 외계 세력의 일원이었다. 코바치는 대체 누구와 손을 잡은 것인가? 그녀의 목적은 무엇인가?

미라 웰스의 등장은 이 강철 새장 안의 역학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제 이곳에는 에단과 릴리를 이용하려는 코바치, 그들을 제거하려는 레이셀이 있었다. 비록 레이셀은 멀리서 정신 공격을 가하고 있었지만, 여기에 정체불명의 목적을 가진 제3의 외계 세력까지 뒤얽히게 된 것이다. 엘라나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판에 휘말렸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임무와 에단, 릴리를 향한 복잡한 감정 사이에서 더욱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만 했다. 보이지 않는 감시자와 위협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