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얽힘의 속임수
제22화
발행일: 2025년 05월 23일
레이셀은 자신의 은신처에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사냥감을 몰기 위한 첫 번째 미끼가 준비되었다. 릴리 리브스. 저 어리고 불안정한 인간 여자아이의 가장 깊은 약점은 이미 파악했다.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그리고 죄책감. 그것을 이용하면, 아무리 코바치의 강철 요새라 할지라도 스스로 걸어 나오게 만들 수 있을 터였다.
그녀는 코바치 시설의 복잡한 감지 시스템 네트워크에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완벽한 침입은 불가능했지만, 시스템의 특정 센서 노드에 순간적인 ‘사각지대’를 만들고, 그 틈을 이용해 목표 지점(시설 외곽, 해안가 절벽 근처)으로 왜곡된 양자 파동을 투사하는 것은 그녀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가능했다.
파동은 극도로 미약했지만, 치밀하게 조작되었다. 그것은 마치… 죽은 자의 마지막 숨결처럼, 강렬한 슬픔과 애정, 그리고 희미한 경고의 감정을 담고 있었다. 사만다 리브스. 릴리의 어미가 남겼을 법한, 바로 그 잔존 의식의 메아리처럼 느껴지도록.
코바치 시설, 에단의 연구실.
부분적으로 수리된 퀀텀 공명 센서가 배경 노이즈 스캔 모드로 작동 중이었다. 이전의 ‘사고’ 이후 완전한 성능을 복구하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인 감지 기능은 살아 있었다. 갑자기, 센서의 경고음이 낮게 울렸다. 화면에는 이전과는 다른, 매우 희미하지만 특이한 패턴의 양자 신호가 포착되었다.
“이건…?” 에단은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에 다가갔다. 신호 자체는 거의 잡음 수준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미묘한 ‘감정적 공명’ 패턴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슬픔, 애정, 그리고… 불안감. 마치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말을 걸어오려는 듯한 느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악몽 속 사만다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옆방에서 잠들어 있던 릴리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녀는 잠옷 차림으로 비틀거리며 연구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눈은 텅 빈 듯 초점이 없었지만, 센서가 포착한 신호가 표시된 모니터 화면에 강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엄마…?” 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녀는 화면 속의 미약한 파형에서, 꿈속에서 그리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그 따뜻한 존재감을 느꼈다. 레이셀의 지속적인 정신 공격으로 약해진 그녀의 방어벽은, 이 교묘하게 조작된 희망의 속삭임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에단은 딸의 반응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릴리, 정신 차려! 그건… 확실하지 않아!” 그는 딸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릴리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화면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올리비아와 엘라나도 신호 데이터를 확인했다. 올리비아는 즉시 데이터의 이상점을 지적했다. “패턴이 너무… 인위적이에요. 감정 공명은 강하지만, 에너지 스펙트럼이 불안정하고 배경 노이즈와의 간섭 패턴도 부자연스러워요. 이건 함정일 가능성이 높아요!”
엘라나 역시 동의했다. 그녀는 이 신호가 레이셀의 솜씨임을 거의 확신했지만,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기술적인 분석을 덧붙였다. “신호의 발신지가 시설 외부의 특정 지점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자연 발생적인 잔존 의식 파동이라면 이렇게 명확한 좌표를 가질 수 없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발신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증거와 논리가 함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에단과 올리비아는 필사적으로 릴리를 말렸다.
“릴리, 제발! 이건 너무 위험해!”
“네 엄마는… 돌아가셨어. 이걸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하지만 릴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와 연결될 수 있다는 단 하나의 가능성. 스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을 씻고,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처절한 희망. 그것이 그녀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있었다.
“아니야… 느낄 수 있어. 엄마가 나를 부르고 있어…” 릴리는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녀의 눈빛에는 위험할 정도로 불안정한 빛이 감돌았다.
그녀는 자신의 숙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작은 가방을 꺼냈다. 그 안에는 코바치가 ‘비상 탈출용’이라며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지급했던 소형 스텔스 드론이 들어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색 비행체. 코바치의 친절함 뒤에는 분명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을 터였다. 아마도 추적 장치나 원격 제어 기능 같은 것들이. 하지만 지금 릴리에게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릴리, 안 돼!” 에단이 그녀를 막아서려 했지만, 릴리는 그를 뿌리치고 드론을 품에 안은 채 시설의 비상 탈출 경로 중 하나로 달려갔다. 그곳은 외부 해안 절벽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감시가 소홀한 루트였다.
엘라나는 릴리의 뒷모습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것이 레이셀의 함정임을 알면서도, 섣불리 물리적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릴리의 의지, 그리고 그녀가 이 함정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것 또한 관찰해야 할 중요한 데이터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녀의 차가운 눈빛 깊은 곳에서 아주 희미한 염려의 파동이 스쳐 지나갔다.
릴리는 마침내 비상 해치를 열고 차가운 밤바다 공기가 몰아치는 절벽 위로 나섰다. 그녀의 손에는 검은색 드론이 들려 있었다. 신호가 발신되는 곳은 바로 저 아래, 파도가 부서지는 어두운 해안가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드론의 시동 버튼을 눌렀다. 희미한 모터 소리와 함께 드론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어머니를 향한, 죽음을 향한 위험한 비행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발밑, 어둠 속에서 레이셀의 차가운 미소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함정은 완벽하게 작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