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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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5월 26일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희미한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릴리를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은 에단에게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자, 지옥 같은 현실을 버텨낼 유일한 이유였다.

통제실은 즉시 전쟁 상황실처럼 변모했다. 에단은 광적인 집중력으로 퀀텀 공명 센서 앞에 앉았다. 그의 손가락은 콘솔 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핏발 선 눈은 오직 화면 속의 미세한 양자 파동만을 쫓았다. 그는 센서의 감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모든 필터를 조정하며 딸의 희미한 흔적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마치 망망대해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은,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엘라나는 에단의 옆에서 센서 시스템에 직접 자신의 외계 기술 인터페이스를 연결했다. 그녀의 손길이 닿자,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센서의 알고리즘이 재구성되고 증폭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레이셀이 구축했을 ‘정신 감옥’의 예상 구조와 차원 위상 특성을 설명하며, 릴리의 양자 서명이 어떤 형태로 ‘메아리’처럼 반향될 수 있는지 예측 모델을 제시했다. 그녀의 지식은 에단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열쇠였다.

올리비아는 두 사람 사이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센서가 포착하는 무수한 잡음 속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고, 엘라나가 제시하는 외계 이론의 타당성을 과학적으로 검토하려 애썼다. 그녀는 여전히 엘라나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지만, 릴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협력이 필수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몇 시간, 혹은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통제실에는 마시다 만 커피 잔과 에너지 드링크 캔만이 쌓여갔고, 세 사람의 얼굴에는 극도의 피로와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센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잡음만을 토해낼 뿐이었다.

“젠장! 아무것도 없어! 정말… 없는 건가?” 에단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콘솔을 내리쳤다.

바로 그때였다.

정신 감옥 깊은 곳에서, 릴리의 필사적인 저항이 마침내 미약한 파동을 만들어냈다.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그녀의 의지, 현실을 ‘선택’하려는 강력한 양자 관측의 힘이 아주 희미한 ‘메아리’가 되어 시공간의 벽을 넘어 흘러나온 것이다.

삐빅- 삐비빅-!

센서의 경고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화면의 한구석, 무수한 노이즈 패턴 사이에서 이전과는 다른, 극도로 미약하지만 일관된 구조를 가진 양자 파동이 포착되었다.

“찾았다!” 에단이 외쳤다.
“이 패턴… 릴리야! 릴리가 보내는 신호야!” 엘라나가 즉시 파동 분석에 들어갔다.
“좌표 특정 가능해요! 에너지 벡터 추적 중!” 올리비아가 다급하게 외치며 데이터를 입력했다.

세 사람의 노력과 릴리의 필사적인 저항이 마침내 기적처럼 결합된 순간이었다. 몇 분간의 숨 막히는 분석 끝에, 마침내 릴리가 갇힌 곳의 대략적인 좌표가 특정되었다. 지구 저궤도 상공, 일반적인 관측 장비로는 감지되지 않는 특수한 위상 공간, 혹은 숨겨진 포켓 차원이었다.

안도감은 잠시였다. 곧바로 더 큰 절망이 그들을 덮쳤다. 좌표를 알아냈다고 해도, 그곳에 갈 방법이 없었다. MI6의 기술력으로도 접근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가지? 당장이라도 가야 하는데!” 에단은 딸을 구하기 위해 당장이라도 우주로 뛰쳐나갈 기세였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들에게는 수단이 없었다.

바로 그때, 통제실의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알렉산더 코바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과 진심으로 분노하는 듯한 표정이 완벽하게 연출되어 있었다. 그의 뒤에는 냉혹한 표정의 이고르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리브스 박사님… 릴리 양의 일은 정말이지… 비극입니다. 저 역시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코바치는 에단에게 다가와 위로하듯 어깨를 두드렸다. 그 손길이 뱀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절망하기엔 이릅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군요.”

그는 마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그들이 방금 릴리의 좌표를 특정해냈음을 알고 있었다.

“저는… 제 모든 것을 걸고 릴리 양을 구출하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코바치는 결연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저의 최첨단 스텔스 우주선, ‘프로메테우스’ 호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최고의 파일럿과… 제 가장 신뢰하는 정예 부대(이고르가 이끄는)도 함께 보낼 것입니다. 이 모든 지원에, 저는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릴리 양의 무사 귀환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의 제안은 너무나 관대해서 오히려 섬뜩할 정도였다. 딸을 구하려는 일념에 눈이 먼 에단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안 돼요, 에단! 이건 함정이에요!” 올리비아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의 배를 타고 가는 건… 늑대 소굴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하지만 에단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가? 없었다. 그는 코바치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감사함 대신 깊은 불신과 살의가 담겨 있었지만,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소.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상황을 보고받은 빅터 할로우 역시 마지못해 이 위험한 동행을 승인했다. 그는 MI6 최정예 요원 팀을 급파하여 코바치의 ‘지원’을 감시하고, 유사시 개입할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엘라나 역시 망설임 없이 동행을 결정했다. 릴리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코바치의 위험성 사이에서, 그녀는 직접 행동하는 길을 택했다.

미라 웰스는 이 모든 상황을 자신의 숙소에서 조용히 모니터링하며, 미묘한 미소와 함께 어딘가로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불안정한 동맹이 다시 한번 결성되었다. 각기 다른 목적과 의심을 품은 채, 그들은 이제 미지의 적과 교활한 조력자가 뒤섞인 위험천만한 구출 작전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코바치의 검은 우주선, 프로메테우스 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이 구원일지, 아니면 더 깊은 파멸일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