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진 잠입
제26화
발행일: 2025년 05월 27일
심해처럼 어둡고 차가운 우주 공간. 알렉산더 코바치의 최첨단 스텔스 우주선, '프로메테우스' 호가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매끈한 검은색 동체는 주변의 빛과 전파를 거의 완벽하게 흡수하여, 맨눈으로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탐지 장비로도 포착하기 어려웠다. 그 자체로 그림자이자 유령 같은 존재였다.
함선 내부의 브릿지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다.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사방에 떠 있었고, 부드러운 인공 중력이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무겁고 차가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종석에는 코바치가 고용한 최고의 파일럿이 앉아 있었고, 브릿지 한쪽에는 에단, 올리비아, 엘라나가 굳은 표정으로 항해 데이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다른 구역에는 빅터 할로우가 이끄는 MI6 정예 요원 팀과, 이고르가 지휘하는 코바치의 중무장 용병 부대가 각각의 공간에 분리된 채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불안정한 동맹. 언제 서로에게 총구를 돌릴지 모르는 위태로운 동행이었다.
“목표 좌표까지 5분 남았습니다.” 파일럿의 냉정한 목소리가 브릿지에 울렸다. “위상 공간 진입 시퀀스 준비.”
에단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릴리가 있는 곳. 그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불안과 기대로 바짝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엘라나가 조종석 옆의 보조 콘솔 앞에 섰다. “제가 좌표 보정과 위상 동기화를 맡겠습니다. 레이셀의 방어막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기술적 허점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콘솔 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자,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하학적 패턴과 에너지 흐름도가 나타났다.
프로메테우스 호가 목표 좌표에 도달하자, 함선 외부의 풍경이 기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별빛이 휘어지고 색깔이 변하며, 공간 자체가 젤리처럼 출렁이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레이셀이 구축한 고차원 위상 공간의 입구였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감지조차 할 수 없는, 숨겨진 차원의 주머니였다.
“위상 불안정성 급증! 선체에 가해지는 차원 압력이 위험 수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파일럿이 다급하게 외쳤다.
“지금이야!” 엘라나가 외치며 특정 에너지 주파수를 방출했다. 그녀의 외계 기술과 프로메테우스 호의 첨단 엔진이 공명하며 만들어낸 특수한 파동이 위상 공간의 방어막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냈다.
프로메테우스 호는 그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마치 바늘귀를 통과하듯 뒤틀린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극심한 진동과 함께 함선 내부의 조명이 몇 차례 깜빡였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기괴한 구조물들. 직선과 곡선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적으로 뒤섞여 있었고, 벽과 통로는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천천히 맥동하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중력은 일정하지 않았고, 공기 중에는 맡아본 적 없는 달콤하면서도 역겨운 냄새가 희미하게 떠돌았다. 레이셀의 비밀 기지 내부였다.
“지금부터 모든 통신은 차단한다. 각 팀은 지정된 경로로 이동. 목표는 릴리 리브스 확보 및 탈출.” 할로우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MI6 요원들은 신속하고 절도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면, 이고르가 이끄는 코바치의 용병들은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다. 그들은 이 기괴하고 혼란스러운 환경에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익숙하다는 듯 효율적으로 대열을 갖추고 이동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미리 리허설이라도 한 것처럼 정확했고, 사용하는 장비 중 일부는 이 외계 기지의 기술과 기묘하게 닮아 보였다.
“저들… 뭔가 이상해.” 올리비아가 에단의 팔을 붙잡으며 속삭였다. 그녀의 눈에는 깊은 의심이 서려 있었다. “마치… 이곳 지리를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아.”
올리비아는 이동하는 동안 몰래 소형 스캐너를 작동시켜 코바치 용병들의 통신 채널 주파수를 탐색하거나, 그들의 장비에 초소형 추적 장치를 부착하려 시도했다. 들키면 즉시 제거될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코바치의 진짜 속셈을 밝혀내야 한다는 절박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엘라나는 이 모든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며 일행을 안내했다. 그녀는 레이셀의 기지 구조를 꿰뚫어 보듯 최단 경로를 찾아 나아갔고, 곳곳에 숨겨진 함정이나 감시 장치를 능숙하게 회피하거나 무력화시켰다. 그녀의 존재는 이 절망적인 임무에서 유일한 등대와 같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은 여전히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기지의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기괴한 분위기는 더욱 짙어졌다. 벽면에서는 정체 모를 액체가 흘러내렸고, 복도 곳곳에는 마치 고문이라도 당한 듯 뒤틀린 외계 생명체의 홀로그램 잔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 앞에는 거대한 강철 문이 나타났다. 문 너머에서 릴리의 희미한 신음 소리와 함께, 레이셀의 차갑고 잔인한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목표 지점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문을 열고, 릴리를 구출하는 것뿐. 하지만 문 너머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일지, 그리고 함께 온 ‘동료’들이 언제 배신의 칼날을 드러낼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확인하며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