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의 칼날

27

발행일: 2025년 05월 28일

마침내, 지옥의 문이 열렸다.

할로우의 신호와 함께 MI6 요원이 특수 폭약으로 거대한 강철 문을 날려 버리자, 섬광과 굉음 속에서 기지의 심장부가 드러났다. 그곳은 예상보다 더 끔찍한 광경이었다.

중앙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에너지 감옥이 있었고, 그 안에 릴리가 갇혀 있었다. 그녀는 축 늘어져 의식을 잃은 듯 보였지만, 온몸에는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했고 가늘게 경련하는 모습은 그녀가 겪었을 고통을 짐작게 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마치 승전 기념물이라도 감상하듯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레이셀이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잔인하고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리석은 구더기들이 기어들어왔군.” 레이셀은 침입자들을 경멸하듯 쳐다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녀의 눈빛은 살기로 번뜩였다.

“릴리!” 에단은 딸의 참혹한 모습에 이성을 잃고 뛰쳐나가려 했지만, 엘라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됩니다! 함정일 수 있어요!”

엘라나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레이셀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끝에서 응축된 암흑 에너지가 쏘아져 나와, 방 전체를 휩쓸었다.

콰아아아앙-!

강력한 에너지 폭풍이 MI6 요원들을 강타했다. 방어막을 펼쳤음에도 몇몇 요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순식간에 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레이셀!” 엘라나가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레이셀에게 달려들었다. 두 외계 존재의 격돌이 다시 시작되었다. 빛과 어둠이 격렬하게 부딪히며 주변의 기괴한 구조물들을 박살 냈다.

MI6 요원들은 엄폐물을 찾아 필사적으로 응전했지만, 레이셀이 미리 설치해 둔 자동 방어 시스템과 그녀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할로우는 부상을 입은 요원들을 지휘하며 버티려 했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에단은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오직 딸에게 향하는 길만을 찾았다. 그는 엘라나와 레이셀의 격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파고들며 에너지 감옥으로 돌진했다.

바로 그때였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탕! 타타탕!

총알은 레이셀이나 그녀의 방어 시스템이 아닌, MI6 요원들의 등 뒤에서 날아왔다.

“크헉!”
“이… 이 자식들이!”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며 MI6 요원들은 경악했다.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코바치의 용병들이었다. 이고르가 냉혹한 표정으로 손짓하자, 용병들은 일제히 MI6 요원들을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배신. 그것도 최악의 타이밍에 터져 나온, 비열하고 잔인한 배신이었다.

“이 개자식들…! 코바치!!!” 할로우는 피를 토하며 외쳤지만, 그의 외침은 이고르가 쏜 총탄에 묻혔다. 그는 복부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코바치의 진짜 목적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는 릴리뿐만 아니라, 싸움으로 인해 약해진 레이셀과 그녀의 외계 기술까지 통째로 손에 넣으려 했던 것이다. 이 구출 작전 자체가 그의 거대한 함정의 일부였다.

“안 돼… 예상했어야 했는데…” 올리비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 배신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그녀는 품속에서 몰래 준비해 두었던 소형 EMP 장치를 꺼내 들었다. 코바치 용병들의 첨단 장비를 무력화시킬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장치를 작동시키려던 순간, 이고르의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포착했다.

탕!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올리비아의 어깨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총알은 치명적인 위치에 박혀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그녀는 필사적으로 에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에단… 코바치… 조심… 해…”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사만다… 미확인… 금속… 엘라… 나를… 믿어…”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녀의 눈은 힘없이 감겼다. 에단의 눈앞에서, 그의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올리비아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올리비아아아아아아아!!!!”

에단의 절규가 전장을 갈랐다. 그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슬픔, 분노, 배신감. 모든 감정이 뒤섞여 그의 이성을 불태워버렸다. 그는 더 이상 물리학자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한 마리의 짐승이었다.

“이고르…! 코바치…! 네놈들 전부 죽여버리겠어!!!”

에단은 맨몸으로,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 속을 가로질러 이고르와 코바치의 용병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귀와 같았다.

전장은 이제 삼파전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엘라나와 레이셀의 격돌, MI6 잔존 병력과 코바치 용병들의 처절한 총격전,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에단의 광기 어린 돌격. 그 중심에는 여전히 에너지 감옥 안에 갇힌 채, 이 모든 비극을 촉발시킨 릴리가 있었다. 배신의 칼날은 너무나 깊숙이 박혀, 모두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