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제28화
발행일: 2025년 05월 29일
"올리비아아아아아아아!!!!"
에단의 절규는 찢겨나간 현실의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그의 눈앞에서 연인의 따뜻했던 미소가 싸늘한 죽음의 가면으로 바뀌는 순간, 그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슬픔, 죄책감, 그리고 자신의 연구가 불러온 재앙에 대한 분노가 핵폭발처럼 터져 나왔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사만다의 죽음, 그리고 이제 올리비아까지. 그를 지탱하던 마지막 버팀목마저 코바치라는 탐욕스러운 괴물과 그의 하수인들에 의해 잔인하게 짓밟혔다.
에너지 감옥 안, 아버지의 절규는 릴리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강타했다. 레이셀의 잔혹한 정신 고문으로 이미 너덜너덜해진 그녀의 의식은 아버지의 고통과 공명하며 끔찍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어머니가 남긴 암호, 오디세우스의 비명, 머서 교수의 피. 이 모든 비극의 퍼즐 조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광란의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관측'이라는 행위가 있었다. 본다는 것, 알아차린다는 것 자체가 저주였던가?
‘아니야… 이건 저주가 아니야…’
극심한 고통과 혼란의 절정에서, 릴리의 의식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마치 평생을 흑백으로 보던 사람이 처음으로 색깔을 인지하게 된 것처럼, 그녀의 눈앞 세상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를 둘러싼 에너지 감옥, 레이셀의 사악한 의지, 코바치 용병들의 움직임, 심지어 공간 자체의 구조까지… 모든 것이 희미한 녹색 빛을 띤 복잡한 코드 라인과 기하학적인 데이터 스트림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코드와 데이터의 스트림이 세상의 근본이라는 듯 그녀의 눈앞에서 흘러 다녔다.
그녀는 이 코드들을… 읽을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정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그녀가 가진 능력의 본질이었다. 세상을 단순히 ‘관측’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흐르는 정보의 흐름, 현실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코드를 인지하고 재정의하는 힘. 엘라나가 어렴풋이 감지하고 두려워했던 바로 그 잠재력. 지금,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 능력이 마치 잠금 해제되듯 폭발적으로 깨어난 것이다.
파지지직-! 카가가강!
릴리의 눈동자가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비인간적인 푸른 빛으로 폭발하듯 타올랐다! 그녀를 속박하던 에너지 감옥의 결속력이 안쪽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균열을 일으켰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오는 미지의 존재처럼, 릴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양자 에너지가 감옥의 구조를 원자 단위에서부터 해체하기 시작했다.
“네… 네 이 보잘것없는 힘이… 감히!” 레이셀이 경악하며 에너지 감옥의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녀의 기술은 이제 릴리라는 존재 자체가 내뿜는, 현실의 법칙을 왜곡하는 근원적인 힘 앞에서 무력했다.
에너지 감옥이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며 폭발했다! 푸른 빛의 잔해 속에서 릴리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피부는 창백하게 빛났고, 눈동자에서는 모든 인간적인 감정이 증발한 채, 오직 차갑고 절대적인 힘의 의지만이 느껴졌다. 그녀는 더 이상 에단의 딸, 릴리 리브스가 아니었다. 우주의 법칙을 다시 쓰는, 깨어난 ‘관측자’였다.
“크… 크아악! 이럴 리가 없어! 네놈은 고작 인간인데!” 레이셀은 본능적인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통제 불가능한 힘 앞에서 고대의 존재조차 전율했다.
릴리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의지가 현실을 강제로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기괴한 외계 구조물의 벽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물질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코바치 용병들의 발목을 휘감고, 살갗을 녹이며 뼈를 드러냈다.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릴리의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바닥의 중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용병들은 종이 인형처럼 천장과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육중한 전투복은 찌그러진 캔처럼 변형되었고, 터져 나온 내장과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어떤 용병은 천장에 처박힌 채 터져 버렸고, 어떤 용병은 바닥에 짓이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그들이 쏘아대는 총탄은 허공에서 녹아내리거나, 방향을 틀어 동료의 머리를 꿰뚫었다. 최첨단 에너지 라이플은 내부에서부터 폭발하여 사용자의 팔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이고르가 발악하듯 쏘아댄 플라스마 포는 허공에서 뱀처럼 휘더니, 그의 남은 팔을 녹여내며 끔찍한 비명을 자아냈다.
잔혹한 현실 조작. 그것은 분노나 증오에 기반한 파괴가 아니었다. 마치 버그를 삭제하듯,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지워버리듯, 차갑고 무심하게 이루어지는 ‘수정’ 작업이었다. 그 비인간적인 방식이 레이셀과 코바치의 용병들 모두에게 극한의 공포를 선사했다.
한편, 올리비아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잃은 에단은 이고르를 향해 짐승처럼 돌진하고 있었다. 그의 안에서도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사만다의 죽음 이후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던 죄책감과 무력감, 그리고 우주의 비밀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이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희미한 양자 감응 능력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킨 것이다. 이것은 릴리처럼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극한의 고통과 상실이 억지로 끄집어낸, 뒤틀리고 불안정한 힘이었다.
그가 복수심에 불타는 눈으로 이고르를 노려보며 포효하는 순간, 그의 의식에서 방출된 날카로운 파동이 주변 용병들의 정신을 직접 강타했다.
“크아악! 눈! 내 눈이!”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으아악!”
가장 가까이 있던 용병들의 눈과 귀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뇌가 직접적인 공격을 받은 듯, 극심한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발작을 일으켰다. 어떤 용병은 정신이 붕괴되어 스스로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또 다른 용병은 동료를 적으로 인식하고 미친 듯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에단의 힘은 상대의 정신 방벽을 찢고 들어가 가장 깊은 공포와 고통을 증폭시키는, 잔인하고 원초적인 정신 공격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의 슬픔과 분노는 그 자체로 파괴적인 무기가 되어 적들의 정신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두 개의 각성. 하나는 차갑고 절대적인 현실 조작, 다른 하나는 뜨겁고 광기 어린 정신 파괴. 부녀의 비극적인 각성은 전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었다. 코바치의 정예 용병들은 잔혹하게 학살당했고, 레이셀조차 압도적인 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엘라나는 이 모든 광경을 경악과 연민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류의 잠재력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하는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강철 새장은 이제 피와 광기로 물든, 걷잡을 수 없는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