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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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5월 04일

런던 중심가의 고급스러운 오피스 빌딩. 닥터 미라 웰스의 정신과 상담실은 외부의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된 고요한 공간이었다. 부드러운 간접 조명과 값비싼 가구, 벽에 걸린 추상화는 방문객에게 안정감을 주려는 듯 세심하게 연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에단 리브스에게 이 모든 것은 그저 잘 만들어진 무대 세트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그는 푹신한 가죽 소파에 몸을 묻었지만, 편안함 대신 가시방석 같은 불편함만 느꼈다. 어제 연구소에서의 참담한 실패 이후, 올리비아의 간곡한 권유로 마지못해 찾아온 곳이었다.

“에단, 와주셔서 다행이에요.”

미라 웰스는 맞은편 안락의자에 우아하게 앉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완벽하게 손질된 금발과 차분한 푸른 눈동자,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녀는 혼란에 빠진 환자를 다독이는 데 익숙한 전문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세련된 가면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어제 발표는… 잘 안됐다고 들었어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에단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망했죠. 완전히.” 자조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어제 있었던 공황 발작과 동료들의 비웃음, 설리반 소장의 싸늘한 경고를 털어놓았다.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좌절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왜 그렇게… 그 이론에 집착하는 걸까요, 에단?” 미라가 차분하게 물었다.

“집착이 아닙니다. 진실이니까요.” 에단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요.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 우주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그는 어린 시절 밤하늘에서 보았던 설명할 수 없는 빛과 비행 물체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던, 편집증 환자로 취급받을까 두려워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기억. 그리고 사만다의 죽음. 단순한 교통사고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기이했던 정황들. 그의 불안과 우울증, 알코올 의존증의 뿌리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세상을 향한 불신, 그리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공포.

“그 ‘무언가’가 당신의 이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미라의 눈빛이 미묘하게 빛났다. 사냥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관련이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내 이론이 바로 그 해답이에요!” 에단은 거의 외치듯 말했다. “우주는 관측될 때만 존재해요. 마치 거대한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필요할 때만 데이터를 로딩하는 거죠. 관측되지 않은 영역은… 그냥 확률의 파동 상태일 뿐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텅 빈 가능성!”

미라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에단의 말을 경청했다. 그녀는 공감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집요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에단, 당신의 ‘관측’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당신의 관측이 존재하지 않던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녀의 질문은 정확히 에단의 이론의 핵심, 그리고 그가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을 건드렸다. 만약 자신의 관측이 정말로 현실을 창조한다면, 자신이 밤하늘에서 ‘찾아낸’ 그 미확인 신호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자신이 무언가를 깨워버린 것은 아닐까?

상담 시간이 끝나갈 무렵, 에단은 탈진한 상태였다.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는 약간의 후련함과 동시에, 자신의 이론이 가진 섬뜩한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더욱 짙게 그를 짓눌렀다.

상담실을 나온 그는 밤이 찾아온 런던의 거리를 정처 없이 걸었다. 하늘에는 희미한 별 몇 개만이 도시의 불빛 사이로 간신히 보였다. 하지만 에단의 눈에는 그 너머, 아직 아무도 관측하지 않아 물리적 실체를 갖지 못한, ‘존재하지 않는 별들’이 가득한 광활한 어둠이 펼쳐져 있는 듯했다.

텅 빈 확률의 바다.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이자 동시에 상상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린 심연이었다. 그는 그 심연의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매혹과 함께,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를 느꼈다.

‘정말… 내가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무언가가 나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는 걸까?’

그의 등 뒤로, 도시의 불빛 속에 숨은 누군가의 차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편집증일까? 아니면… 정말 무언가가 그의 관측을, 다시 관측하고 있는 걸까? 그는 불안감에 마른 침을 삼키며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