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안개 속 시선
제4화
발행일: 2025년 05월 05일
다음 날, 에단은 런던 시내의 낡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뿌연 안개가 도시 전체를 삼킨 듯 자욱했다. 가로등 불빛조차 희미한 후광처럼 번져 보였고, 익숙한 거리의 풍경은 비현실적인 무대처럼 느껴졌다. 눅눅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는 어젯밤 미라 웰스와의 상담 이후 더욱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려, 혹은 잊으려, 연구에 몰두하기로 했다. 그의 급진적인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역사적 기록이나 잊혀진 과학 문헌이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그것이 그를 이곳, 먼지 쌓인 고서들이 잠든 도서관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길수록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서늘한 감각은 떨쳐낼 수 없었다. 누군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안개 속에서 흐릿한 인영들이 움직였지만, 그뿐이었다. 바쁘게 오가는 행인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의 시선이 집요하게 자신에게 꽂혀 있는 듯한 느낌. 코너를 돌 때마다, 시야에서 아슬아슬하게 사라지는 검은 코트 자락 같은 것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젠장, 또 시작인가.’ 에단은 마른 침을 삼켰다. 편집증. 미라 웰스는 그렇게 진단할 것이다. 스트레스와 알코올이 만들어낸 망상이라고. 하지만 온몸의 감각은 끊임없이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고.
도서관의 삐걱거리는 회전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그는 잠시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고, 서고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잊혀진 물리학 저널, 고대 천문학 기록, 심지어 오컬트나 신비주의 서적까지 닥치는 대로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도서관 창밖, 안개 자욱한 거리에 머물러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별다른 소득 없이 시간을 보낸 후,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도서관을 나섰다. 안개는 더욱 짙어져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리브스 박사님이시죠?”
깔끔하게 재단된 회색 정장 차림의 남자가 안개 속에서 불쑥 나타나 그의 앞을 막아섰다.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에는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눈빛은 에단의 속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에단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누구… 시죠?”
남자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중요한 연구를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우주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관점을 가지셨더군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제 연구에 대해 어떻게…?” 에단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좁고, 벽에도 귀가 많습니다, 박사님.” 남자는 에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손길에 에단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가끔은… 너무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특히, 당신이 무엇을 ‘관측’하고 있는지 모를 때는 말입니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남자는 몸을 돌려 안개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에단은 잠시 멍하니 그의 뒷모습이 사라진 자리를 응시했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그의 시선이 길 건너편 카페 창가에 잠시 머물렀다. 창가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한 여인. 칠흑 같은 긴 머리, 조각처럼 아름다운 옆모습. 하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는 얼음장 같은 차가움이 서려 있었다.
여자는 마치 에단의 시선을 느낀 듯, 아주 잠깐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맞췄다. 그 눈빛은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깊고 이질적이었다. 무심한 듯,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차가운 관찰자의 시선이었다. 에단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여자의 차가운 눈빛에 에단은 멈칫하다 시선을 돌렸다. 그녀를 계속 보고 있으면 얼어 붙을 것 같았다.
에단은 여전히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불안하게 흔들리는 걸음으로 안개 속으로 다시 몸을 숨겼다. 그의 평범했던 일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뒤틀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자신이 런던의 짙은 안개보다 더 깊고 위험한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