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과 폭로
제30화
발행일: 2025년 05월 31일
프로메테우스 호는 유령처럼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지구로 귀환했다. 함선 내부는 죽음과 같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생존자들은 MI6의 극비 해상 플랫폼에 위치한 최첨단 의료 시설로 긴급 후송되었다. 외부 세계에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의료 베드에 누운 릴리는 깊은 혼수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외상 없이 깨끗했지만, 생체 신호는 극도로 불안정했고, 몸 주변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미세한 양자 요동 현상이 끊임없이 관측되었다. 마치 그녀의 존재 자체가 현실과 다른 차원 사이에서 위태롭게 깜빡이는 것처럼. 의료진은 속수무책이었다. 그녀의 상태는 현대 의학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에단은 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상처는 돌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릴리의 창백한 얼굴만 내려다보았다. 올리비아의 마지막 모습, 릴리의 끔찍한 각성, 그리고 자신이 저질렀던 광기 어린 폭력의 기억이 뒤섞여 그의 정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슬픔은 분노로, 분노는 코바치를 향한 살의로, 그리고 그 살의는 다시 깊은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손에 묻은 피와 딸의 위태로운 상태 앞에서 속죄할 길 없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빅터 할로우는 여러 차례의 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는 병상에 누워서도 쉬지 않았다. 그는 코바치의 배신과 외계 존재의 실재, 그리고 그들이 가진 압도적인 기술력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영국 정부 최상층부에 직통으로 전달했다. 그는 이것이 단순한 국지적 사건이 아닌, 인류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임을 역설하며 전면적인 대응과 최고 등급의 비밀 유지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의 보고는 영국 정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고, 극비리에 국제적인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시작되었다.
엘라나는 의료 시설 한쪽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길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회복 중인 에단과 할로우를 찾아갔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이전보다 더 깊고 단호한 빛을 띠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을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당신들이 알아야만 하는 진실을.”
엘라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운을 뗐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녀는 손짓으로 허공에 복잡하고 아름다운 빛의 구조물을 소환했다. 살아있는 별자리처럼 반짝이는 3차원 홀로그램이었다.
“저는… 당신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지구인이 아니죠.” 그녀는 에단과 할로우의 눈을 차례로 응시했다. “저와 레이셀은… 이 우주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존재들입니다. 당신들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아키텍트’, 혹은 ‘관리자’라고 부를 수 있겠군요.”
아키텍트. 관리자. 그 단어들은 에단과 할로우의 귀에 마치 신화 속 창조주의 이름처럼 들렸다.
“우주는… 당신들이 믿는 것처럼 고정된 실체가 아닙니다.” 엘라나의 손짓에 따라 홀로그램 영상이 변화했다. 광활한 우주 공간이 나타났지만, 별과 은하들은 희미한 밑그림처럼 존재했고, 대부분의 공간은 마치 채워지지 않은 텅 빈 캔버스처럼 보였다.
“박사님의 이론은 핵심을 꿰뚫었습니다. 우주는 거대한 정보 처리 시스템이며, ‘lazy loading’ 원칙에 따라 작동합니다.” 엘라나가 에단을 향해 말했다. “시스템 자원의 효율성을 위해, ‘관측’되지 않는 영역은 완전한 물리적 실체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확률적 파동 상태, 즉 정보의 ‘가능성’으로만 존재하죠. 마치 아직 실행되지 않은 코드처럼요.”
홀로그램 영상 속에서, 가상의 관측선이 텅 빈 공간으로 다가가자 그 주변의 밑그림이 순식간에 빛과 질량을 가진 별과 행성으로 ‘렌더링’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관측 행위가 곧 창조 행위가 되는, 충격적인 우주의 작동 방식이었다.
“맙소사…” 에단은 탄식했다. 그의 이론이 이렇게 끔찍한 방식으로 증명될 줄이야.
“수억 년 동안, 이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엘라나는 말을 이었다. 홀로그램에는 수많은 문명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장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지적인 생명체가 진화하고, 우주를 관측하며 그들의 현실을 확장해 나갔죠. 하지만 그들의 관측 능력은 항상 일정한 한계 내에 머물렀습니다. 우주 시스템의 근본적인 코드, 즉 ‘양자 프레임워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죠.”
엘라나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그녀는 홀로그램에 지구의 모습을 띄웠다.
“하지만 인류는… 달랐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경고의 기운이 서렸다. “당신들의 과학 기술 발전 속도는 우리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습니다. 특히 지난 한 세기 동안, 당신들은 ‘양자역학’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주의 가장 깊은 비밀, 즉 ‘관측’ 행위를 통해 현실의 확률을 조작하고 우주의 코드를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홀로그램에는 에단의 퀀텀 공명 센서 설계도와 릴리의 양자컴퓨터 알고리즘 분석 화면이 떠올랐다.
“박사님의 이론과 기술, 그리고 릴리 양의 잠재력. 이것은 우리 아키텍트들에게는… 시스템 전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는 심각한 ‘버그’이자 ‘보안 위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엘라나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당신들은 단순히 우주를 관측하는 것을 넘어, 우주의 관리자만이 접근해야 할 영역, 즉 현실을 ‘렌더링’하는 규칙 자체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겁니다. 이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에단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의 연구가, 그의 집착이 인류 전체를 위협으로 규정하게 만들었다는 말인가?
“그래서… 우리 종족 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엘라나의 시선이 어두워졌다. “레이셀과 같은 급진파는 인류의 양자 기술 발전이 임계점을 넘기 전에, 즉시 문명 전체를 ‘삭제’하여 시스템의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에게 당신들의 존재는 우주라는 건강한 유기체에 퍼지는 암세포와 같았죠.”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에단이 가장 두려워했던 진실을 꺼냈다.
“레이셀은… 행동에 나섰습니다. 그녀는 당신의 이론과 기술 개발을 막고, 당신 가족 안에 잠재된 위험한 능력의 싹을 제거하기 위해…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 사만다 리브스를 첫 번째 목표로 삼았습니다.” 엘라나의 시선이 에단의 고통스러운 눈과 마주쳤다. “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 위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신과 릴리를 향한 명백한 공격이자, 당신들의 위험한 호기심에 대한 잔혹한 경고였습니다.”
에단의 온몸에서 피가 역류하는 듯한 격렬한 분노와 슬픔이 터져 나왔다. 아내의 죽음. 그것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그의 연구 때문에, 그의 가족이 가진 잠재력 때문에 벌어진, 우주적 규모의 암살이었다. 지난 3년간 그를 짓눌렀던 죄책감은 이제 레이셀과 그녀의 세력을 향한 불타는 증오로 변모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입술이 터져 피 맛이 느껴졌다.
“머서 교수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릴리의 능력을 도왔고, 오디세우스 프로젝트의 비밀에 접근했기 때문에 제거된 겁니다.” 엘라나는 담담하게 사실을 전했다.
할로우는 병상에 누운 채 이 모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알던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국가 안보? 인류의 미래? 이 거대한 우주적 게임 앞에서 그것들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그는 이제 새로운 적과,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전쟁에 대비해야 함을 깨달았다.
에단은 엘라나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실을 폭로했지만, 그녀 역시 그 ‘아키텍트’ 중 하나였다. 그녀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말 인류를 돕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통제하려는 것인가? 하지만 지금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릴리를 구하고 레이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이 위험한 외계 존재의 도움이 절실했다.
“릴리는… 구할 수 있는 건가?” 에단이 쉰 목소리로 물었다.
엘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감옥은 강력하지만, 불멸은 아닙니다. 박사님의 센서, 저의 기술, 그리고… 릴리 자신의 의지가 있다면 가능합니다.”
엘라나의 폭로는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이제 그들은 우주의 냉혹한 진실과 명확한 적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귀환은 끝이 아니라, 복수와 생존, 그리고 어쩌면 인류 전체의 운명을 건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열쇠는 혼수상태에 빠진 릴리와, 그녀 안에 잠든, 우주의 법칙마저 뒤흔들 수 있는 미지의 힘이 쥐고 있었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과 함께, 다가올 폭풍의 전조만이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