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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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04일

밤의 장막을 뚫고, MI6의 최첨단 스텔스 수송기가 소리 없이 알프스 산맥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만년설 봉우리 아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깊은 골짜기 어딘가에 코바치의 비밀 연구 시설이 숨겨져 있었다. 작전명 '판도라'. 그 위험한 상자를 열기 위한 침투가 시작된 것이다.

수송기 내부에는 극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할로우가 직접 이끄는 MI6 최정예 타격팀 '에코-6' 대원들이 완전 무장 상태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에단과 엘라나도 있었다. 에단은 차갑게 식어버린 눈으로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고, 엘라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이었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미세한 경계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릴리는 안전상의 이유, 그리고 그녀의 통제 불가능한 힘에 대한 우려 때문에 본부에 남겨졌다.

"목표 지점 접근. 5분 후 강하 시작." 파일럿의 낮은 목소리가 인터콤을 통해 흘러나왔다.

에코-6 대원들은 능숙하게 하강 준비를 마쳤다. 그들은 일반적인 군인이 아니었다. 대테러 작전은 물론, 비정규전과 초자연적 위협 대응 훈련까지 받은 MI6 내에서도 최고의 베테랑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도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상대는 정체불명의 외계 기술과 생체 병기를 보유한 미치광이 억만장자였다.

수송기가 고도를 낮추자, 깊은 협곡 바닥에 위장된 거대한 해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열 감지나 레이더 스캔을 피하기 위해 특수 처리된 입구였다. 엘라나가 미리 제공한 코드를 이용해 해치를 열고, 수송기는 시설 내부의 비밀 격납고로 조용히 착륙했다.

마치 그들의 침입을 예상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격납고는 텅 비어 있었다.

"조심해. 뭔가 이상하다." 할로우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며 대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에코-6는 신속하게 대형을 갖추고 격납고 문을 열었다.

그들 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복도는 차가운 금속과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곳곳에 핏자국과 정체 모를 생체 조직의 파편들이 널려 있었다. 유리벽 너머의 실험실 안에는 끔찍한 모습의 '실험체'들이 갇혀 있었다. 납치된 민간인들로 보이는 그들은, 코바치의 잔인한 실험으로 인해 인간의 형상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다. 몸의 일부가 기괴하게 변형되거나, 기계 장치와 강제로 융합되었고, 공허한 눈동자는 이미 미쳐버렸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벽에는 발톱 자국과 핏빛 글씨로 남겨진 절규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이… 악마 같은 놈…" 한 대원이 욕설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에단은 이 끔찍한 광경 앞에서 속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인간의 탐욕과 광기가 만들어낸 생지옥. 코바치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었다. 그는 인류 자체를 모독하는 괴물이었다. 복수심이 다시 한번 그의 내면에서 차갑게 타올랐다.

엘라나는 아무 말 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연민보다는 차가운 분석의 빛이 감돌았다. 그녀는 벽에 묻은 생체 조직 샘플과 에너지 잔류 패턴을 스캔하며 코바치가 사용한 기술의 수준과 외계 기술의 '오염도'를 측정하고 있었다. 이곳의 기술은 미라 웰스가 속한 세력의 것과 유사한 특징을 보였다. 코바치의 배후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전방 복도, 움직임 감지!" 선두에 선 대원이 외쳤다.

복도 끝 어둠 속에서 여러 개의 형체가 나타났다. 그들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남녀노소 다양한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하나같이 텅 비어 있었고, 온몸에서는 불안정하고 위험한 양자 에너지가 희미하게 방출되고 있었다.

'퀀텀 하이브리드'. 코바치가 만들어낸 인공 능력자들이었다.

“환영한다, MI6의 쥐새끼들아.”

스피커를 통해 코바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유와 조롱이 가득했다. 내부 제보는… 역시 함정이었다.

“나의 새로운 자녀들을 소개하지. 인류의 다음 진화 단계를 보여줄 존재들이다!”

코바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이브리드들의 눈이 일제히 섬뜩한 빛을 발하며 에코-6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시설 전체에 강력한 에너지 파동이 울려 퍼지며 '양자 에너지 억제장'이 가동되었다. 엘라나와 에단의 능력을 약화시키거나 무력화시키려는 장치였다.

“제기랄! 모두 교전! 저 괴물들을 막아!” 할로우가 포효하며 총을 발사했다.

복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에코-6 대원들의 총탄이 하이브리드들에게 쏟아졌지만, 그들은 총상을 입고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그들의 몸에서는 기이한 에너지 파동이 방출되어 총알을 튕겨내거나, 주변의 금속 벽을 뒤틀어 방패로 삼기도 했다. 어떤 하이브리드는 맨손으로 콘크리트 벽을 부수거나, 눈에서 파괴적인 에너지 빔을 발사하기도 했다.

"크아악!"
"이 괴물들… 죽질 않아!"

에코-6 대원들은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열세였다. 하이브리드들의 능력은 불안정했지만 파괴적이었고, 무엇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엘라나는 억제장의 영향으로 평소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체 능력과 최소한의 에너지 조작으로 하이브리드들을 상대하며 대원들을 보호하려 애썼다.

에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억제장은 그의 정신 공격 능력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완전히 무력화시키지는 못했다. 그는 복수심을 연료 삼아 남은 힘을 끌어올렸다. 그의 눈빛이 다시 한번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하이브리드들의 텅 빈 정신 속으로 파고들어, 그 안에 잠재된 희미한 인간성의 잔재, 혹은 실험 과정에서 주입된 고통의 기억을 증폭시켜 그들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려 했다.

"멈춰… 제발… 멈춰줘…"

몇몇 하이브리드가 에단의 정신 공격에 괴로워하며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대부분의 하이브리드는 이미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에단의 공격은 그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지만,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지는 못했다.

그리고 복도 저편, 어둠 속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정확히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모습'이었다.

닥터 미라 웰스.

그녀는 평소의 우아하고 부드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색 특수 전투복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기이한 형태의 외계 무기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더 이상 따뜻한 공감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차갑고 무자비한 계산과, 그녀의 정체를 암시하는 이질적인 빛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가면을 벗어 던진 포식자 같았다.

그녀의 양옆에는 다른 하이브리드들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강력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두 기의 강화된 하이브리드가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코바치 하이브리드 프로젝트의 최신 '걸작'인 듯 보였다.

"오셨군요, MI6." 미라 웰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얼음 같은 냉기가 서려 있었다. "코바치 회장님께서 손님맞이를 제대로 하라고 하셔서요. 당신들의 데이터는… 아주 귀중하게 쓰일 겁니다."

그녀의 등장은 상황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들었다. 단순한 함정이 아니었다. 코바치는 자신의 하이브리드 군단뿐만 아니라, 미라 웰스와 그녀가 속한 제3의 외계 세력까지 이 작전에 동원한 것이다. 그들은 에코-6를 단순히 제거하는 것을 넘어, 에단과 엘라나를 생포하고 그들의 능력과 지식을 흡수하려 하고 있었다.

함정은 완벽하게 작동했다. 에코-6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고, 에단과 엘라나는 강화된 적들과 억제장, 그리고 정체를 드러낸 미라 웰스라는 강력한 변수 앞에서 고립되었다. 코바치의 끔찍한 창조물, 하이브리드의 공포와 함께, 외계 세력의 직접적인 위협이 마침내 그들의 눈앞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희망이 아니라, 더 깊은 절망과 죽음만이 가득한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