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토끼굴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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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5월 06일

대학 캠퍼스의 늦은 오후. 빛바랜 벽돌 건물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양자컴퓨팅 연구실은 서늘한 공기와 낮은 기계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릴리 리브스는 숨 막힐 듯한 집안의 공기를 피해 이곳으로 도망치듯 와 있었다.

"…그래서, 네 답은 뭐지, 릴리?"

가브리엘 머서 교수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눈빛은 릴리의 비범한 재능을 꿰뚫어 보는 듯 깊고 차분했지만, 어딘가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남긴 희미한 흔적일까.

교수가 그녀에게 제안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대학의 공식 커리큘럼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그의 개인적인 비밀 프로젝트. 기존 컴퓨팅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양자 알고리즘 개발. 학부생에게, 그것도 아직 1학년인 릴리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릴리는 잠시 망설였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여전히 얼음장 같았고,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안개처럼 그녀의 마음을 감싸고 있었다. 어쩌면 이 프로젝트가 돌파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머니가 남긴 그 알 수 없는 기호들. 어쩌면 양자 세계의 언어였을지도 모른다. 진실에 다가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리고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된 손가락으로 손목 안쪽을 매만졌다. 희미하게 남은 자해의 흔적이 옷소매 아래 감춰져 있었다. 그 순간의 고통과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릴리는 이를 악물었다.

"…할게요, 교수님."

결심이 서자, 목소리는 의외로 단단하게 흘러나왔다.

머서 교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안도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좋아. 그럼 이쪽으로 오지."

그는 연구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거대한 금속 실린더 형태의 기계 앞으로 릴리를 이끌었다. 복잡하게 얽힌 배선과 냉각 장치들이 저음의 허밍 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심장처럼. 최첨단 양자컴퓨터였다.

"이것이 우리가 탐험할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이끈 토끼굴 같은 거지."

양자컴퓨터의 표면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빛이 릴리의 창백한 얼굴을 비췄다. 그녀는 거대한 기계 앞에서 경외감과 함께 알 수 없는 흥분을 느꼈다.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문 앞에 선 듯한 아찔한 감각. 이것은 단순한 연구가 아니었다.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지도 모르는 위험하고 매혹적인 여정의 시작이었다.

같은 시각, 런던 외곽 에단의 집.

에단은 여전히 술기운과 싸우며 어지러운 연구 자료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런던 시내에서 겪었던 기묘한 만남과 불길한 예감은 술로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편집증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목덜미에 느껴졌던 그 차가운 시선의 감각은 생생했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화면에는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제이크 허드슨 - NASA]

제이크 허드슨. 그의 오랜 친구이자, 학문적으로는 늘 미묘한 경쟁 관계에 있던 라이벌. 지금은 NASA에서 극비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화면에는 짧은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에단, 긴급. ASAP 영상 통화 필요. 자세한 건 통화로.]

‘긴급?’

에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이크가 이런 식으로 연락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심장이 불길하게 뛰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무시했을지도 모를 메시지였지만, 최근 겪은 일련의 사건들과 맞물려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에단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제이크가 무엇을 발견한 걸까? 그의 연구와 관련된 일일까? 아니면… 그 이상일까?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어쩌면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예감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는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