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첩된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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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12일

펜트하우스는 더 이상 인간의 공간이 아니었다. 현실과 의식, 서로 다른 차원의 에너지가 뒤엉켜 비명을 지르는 초차원적 전쟁터. 에단과 릴리의 통합된 의식은 코바치와 미라 웰스가 이끄는 절망적인 파상 공세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크윽…!” 에단은 자신의 의식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에 신음했다. 미라 웰스의 외계 용병들이 쏘아대는 사이킥 블래스트와 하이브리드들이 내뿜는 불안정한 양자 에너지가 그의 방어막을 끊임없이 두들겼다. 그는 릴리가 ‘양자 상수’ 조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필사적으로 공격을 막아내고 튕겨냈다. 하지만 밀려드는 파도는 너무 거셌고, 그의 의식은 파도에 침식되는 모래성처럼 서서히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올리비아의 마지막 모습, 이고르의 피 묻은 얼굴, 사만다의 비명… 적들은 그의 가장 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하찮은 방어군.” 미라 웰스는 본모습인 곤충형 외계인의 턱을 딱딱거리며, 여러 개의 팔 중 하나에 들린 기이한 크리스탈 지팡이를 릴리를 향해 겨눴다. 지팡이 끝에서 쏘아진 검은 에너지 빔은 물리적인 파괴력이 아닌, 현실의 ‘코드’ 자체를 교란시키는 파동이었다. 릴리가 조작하려는 양자 상수의 안정성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교활하고 치명적인 방해 공작이었다.

릴리는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의식은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설계도, 즉 현실을 구성하는 복잡하고 방대한 코드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남긴 지혜와 엘라나의 희미한 지원이 등대처럼 길을 비춰주었지만, 그 길은 험난했다.

그녀는 마침내 목표 지점, 지구와 연결된 차원의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관측 상수’를 찾아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기계의 핵심 톱니바퀴처럼, 복잡하게 얽힌 코드 라인의 중심에서 빛나고 있었다. 저 상수의 값을 아주 미세하게, 특정 임계점 이하로 비틀어 버린다면, 코바치의 차원 융합 프로세스는 붕괴하고 균열 에너지의 유입은 차단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상수에 접근하려 할 때마다 미라 웰스의 검은 에너지 파동이 방해했고, 코바치가 끌어들이는 막대한 균열 에너지는 상수 주변의 코드 구조를 끊임없이 뒤흔들며 그녀의 집중력을 흩트렸다. 마치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흔들리는 배의 키를 잡고 항로를 수정하려는 것과 같았다.

‘조금만 더… 집중해야 해… 사랑으로… 조화로…’ 릴리는 어머니의 마지막 속삭임을 되뇌며 필사적으로 의식을 모았다. 분노나 증오가 아닌, 파괴된 세상을 치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려는 순수한 의지. 그 의지가 그녀의 힘을 안정시키고 증폭시키는 열쇠였다.

그녀의 손가락(의식 속의 형상)이 마침내 관측 상수에 닿으려는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상수를 비트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그 변화를 현실에 ‘고정’시키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변화된 상수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붙잡아 줄 강력한 ‘앵커’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녀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마치 거대한 댐의 수문을 닫으려 하지만, 그 엄청난 수압을 버텨낼 지지대가 없는 것과 같았다.

“안 돼…!” 릴리의 의식에 절망감이 스쳤다.

콰르르르릉-!!!

바로 그때, 건물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창밖, 하늘을 뒤덮은 핏빛 에너지 막이 마지막 발악처럼 섬광을 터뜨리며 수축하기 시작했다. 에크릴의 ‘완전 소거’ 프로토콜이 최종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행성 전체를 지워버릴 파괴의 파동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이제 불과 몇 분, 아니 몇 초일지도 몰랐다.

“하하하하! 끝이다! 모든 것이 끝이다!” 코바치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에크릴의 소거조차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믿는 듯했다. 그는 차원 융합을 통해 이 파괴마저 초월하려 하고 있었다.

미라 웰스 역시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녀의 세력은 에크릴의 공격을 예상하고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행성 소거 자체가 그들의 계획 일부일 수도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에단은 릴리의 절망적인 외침을 들었다. 앵커가 필요하다는 것.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의 눈빛에서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고뇌가 사라지고, 차갑지만 숭고한 결의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는 방어막을 유지하던 자신의 의식 에너지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그 모든 힘을,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이루는 양자적 본질을,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 흐름으로 변환하기 시작했다. 릴리를 향해. 그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연료 삼아.

“아빠…?” 릴리의 의식이 경악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에단의 의식이 희미하게 미소 짓는 듯했다. 그의 마지막 속삭임이 릴리의 영혼에 울려 퍼졌다.

‘괜찮다, 내 딸. 이제… 네가 세상을 구할 차례야. 사랑한다…’

에단 리브스라는 존재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불꽃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