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된 의지, 뒤틀린 상수
제43화
발행일: 2025년 06월 13일
에단의 의식은 초신성처럼 폭발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순수한 에너지의 격류가 되어 릴리에게 쏟아졌다. 그것은 단순한 에너지 전달이 아니었다. 그의 삶 전체, 그의 사랑과 고뇌, 지식과 경험,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숭고한 희생 의지까지 모든 것이 릴리의 존재와 양자적 수준에서 융합되는, 장엄하고 비극적인 의식 전이였다.
“아빠아아아아아아아!!!!”
릴리의 비명 없는 절규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어 울려 퍼졌다.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뜨겁게 타오르며 그녀와 하나가 되었다. 상실의 고통은 심장을 갈가리 찢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의 힘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고 안정되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필요한 마지막 조각, 현실을 뒤바꿀 힘을 지탱할 강력한 ‘앵커’이자 꺼지지 않는 의지의 ‘불꽃’이 되어 주었다.
이제 그녀는 릴리이자 에단이었고, 그 둘을 넘어선 새로운 존재였다. 슬픔으로 가득 찼지만 강철처럼 단단한 의지. 우주의 법칙마저 다시 쓸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그 힘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고독한 수호자.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이제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선,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사명감으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네 이놈들!!! 감히 내 신성 모독을!!! 이 하찮은 벌레들이!!!”
코바치는 에단의 희생과 릴리의 변화를 목격하고 이성을 잃은 듯 포효했다. 그의 변형된 몸은 제어되지 않는 균열 에너지로 미친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는 펜트하우스 바닥을 박살 내며 릴리에게 돌진했고, 그의 손끝에서는 행성 표면을 태워버릴 듯한 파괴적인 에너지가 작렬했다. 차원 융합의 완성과 신으로의 등극을 눈앞에 두고 방해받은 것에 대한 광기 어린 분노였다.
미라 웰스 역시 경악하며 총공세를 펼쳤다. 그녀의 곤충 같은 본모습에서 수십 개의 에너지 촉수가 뻗어 나와 릴리를 옭아매려 했고, 크리스탈 지팡이에서는 현실의 구조 자체를 좀먹는 듯한 검은 부식 파동이 쏘아졌다. 저 새로운 존재가 관측 상수를 건드리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그녀의 세력과 에크릴 사이의 오랜 전쟁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발악은, 각성한 릴리-에단의 통합 의식 앞에서는 덧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릴리는 차갑게 빛나는 눈으로 다가오는 위협들을 응시했다. 그녀는 더 이상 회피하거나 방어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아버지의 안정된 의지를 앵커 삼아, 자신의 모든 힘을 현실의 가장 근본적인 코드 라인, 지구와 연결된 차원 융합의 핵심 ‘관측 상수’ 에 집중했다. 그녀의 의지가 상수에 스며들자, 우주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릴리의 의지가 외쳤다. 그녀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조화’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결단력’을 담아, 관측 상수의 값을 거대한 시스템의 레버를 돌리듯. 미세하지만 결정적으로 비틀었다!
우주가… 숨을 멈췄다.
관측 상수가 임계점을 넘어 변화하는 순간, 인과율의 사슬이 끊어지는 듯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즉시, 격렬한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코바치가 끌어들이던 차원 균열의 에너지가 그의 의지를 거슬러 맹렬하게 역류했다! 그가 탐했던 힘이 이제 그를 삼키는 포식자가 되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듯 그 근원인 코바치의 몸 안으로 되돌아가 처박혔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이럴 리가! 나의 힘이! 왜!!!”
코바치는 자신의 에너지에 자신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은 안쪽에서부터 녹아내리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푸른 에너지 라인이 터져 나가며 살과 뼈를 태웠고, 신이 되려 했던 그의 육체는 흉측한 유기물 덩어리로 변해 바닥에 녹아내렸다. 하지만 죽음은 즉시 찾아오지 않았다. 릴리는 그가 자신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를 온전히 느끼도록, 그의 의식만을 또렷하게 남겨둔 채 육체의 붕괴를 천천히 진행시켰다. 그의 비명은 점점 더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소리로 변해갔다.
미라 웰스의 에너지 촉수들은 릴리에게 닿는 순간 먼지처럼 바스러졌고, 현실 부식 파동은 허공에서 힘을 잃고 무력하게 흩어졌다. 릴리는 미라 웰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물리적인 접촉이 아니었다. 그녀의 의지가 미라 웰스의 외계 기술로 이루어진 육체와 정신 구조의 ‘코드’에 직접 간섭했다.
“네… 네놈은 대체…! 우리 종족의 기술을… 어떻게… 크으윽!”
미라 웰스의 몸이 격렬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외골격이 비명을 지르며 안쪽으로 찌그러졌고, 여러 개의 팔다리는 기괴한 각도로 꺾여 나갔다. 그녀의 복안에서는 피눈물 같은 검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릴리는 그녀의 존재를 구성하는 정보 자체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며, 그녀가 타인에게 가했던 고통을 수백 배로 되돌려주고 있었다. 그녀의 정신은 육체의 붕괴보다 더 끔찍한, 영원히 반복되는 악몽의 루프 속에 갇혔다. 차원 도약은커녕, 자살조차 허락되지 않은 영원한 고문이었다.
외계 용병들과 하이브리드들은 자신들의 주인이 겪는 끔찍한 최후를 목격하며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들은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려 했지만, 릴리의 차가운 시선이 그들을 붙잡았다. 그녀가 가볍게 손짓하자, 그들의 존재를 구성하는 양자적 결합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형체 없는 에너지 입자로 분해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빠르고, 깨끗하며, 자비 없는 삭제였다.
펜트하우스 안의 모든 위협이 사라졌다. 오직 코바치의 녹아내리는 육체에서 흘러나오는 끔찍한 신음과 미라 웰스의 의식 속에서 영원히 반복될 비명만이 남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늘! 에크릴의 완전 소거 프로토콜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핏빛 에너지 막은 이제 지구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수축하며 마지막 파괴 에너지를 응축시키고 있었다.
릴리는 창밖의 붉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얻은 힘. 어머니의 마지막 가르침. 엘라나의 믿음. 그녀는 자신의 모든 의지를 하나로 모았다. 이번에는 파괴나 조작이 아니었다. 치유와 안정. 찢겨진 현실을 복구하고, 우주의 조화를 되찾으려는 순수한 염원.
그녀의 몸에서 눈부시지만 부드러운, 생명의 빛과 같은 ‘양자 공명 안정화 파동’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파동은 펜트하우스를 넘어, 런던 시내를 넘어, 대륙과 바다를 건너 지구 전체를 감쌌다.
파동이 닿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다. 도시를 뒤덮었던 차원 균열들이 마치 상처가 아물 듯 부드럽게 닫히기 시작했다. 균열 너머에서 흘러나왔던 이질적인 존재들은 고통 없이 원래의 차원으로 되돌려 보내졌고, 뒤틀렸던 물리 법칙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공포에 질렸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유 모를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파동은 하늘을 뒤덮은 에크릴의 핏빛 에너지 막에 도달했다. 두 개의 거대한 힘이 충돌하는 대신, 릴리의 파동은 에크릴의 파괴 에너지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그 근본적인 불안정성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달래듯. 핏빛 에너지는 서서히 그 색을 잃고 투명하게 변해가더니, 마침내 완전히 소멸했다!
에크릴의 ‘완전 소거’가… 중단되었다!
지구는 구원받았다. 릴리는 마지막 힘을 소진하고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희생, 그리고 자신이 짊어져야 할 이 무거운 힘과 미래. 하지만 이번 눈물에는 슬픔과 함께, 아주 작은 희망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해낸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펜트하우스 바닥에는 코바치가 남긴 흉측한 유기물 얼룩과 미라 웰스의 의식이 갇힌 채 경련하는 시체만이 남아, 그들의 끔찍하고 잔인했던 최후를 증언하고 있었다. 새로운 관측 이론은, 그렇게 피로 쓰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