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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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5월 07일

통화 버튼을 누르자, 휴대폰 화면이 몇 차례 깜빡이며 보안 채널 접속을 알리는 아이콘이 떠올랐다. 잠시 후, 노이즈 섞인 화면 너머로 제이크 허드슨의 얼굴이 나타났다. 평소의 유쾌함은 온데간데없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잔뜩 찌푸린 미간, 그리고 깊은 피로와 불안감이 역력한 눈빛. 배경은 NASA의 통제실 한구석인 듯했지만,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에단, 들리나?” 제이크의 목소리는 낮고 긴장되어 있었다. 마치 주변의 누군가가 엿듣기라도 할까 봐 조심하는 듯했다.

“그래, 제이크. 무슨 일이야? 긴급이라니.” 에단은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심장이 불길하게 요동쳤다.

제이크는 화면 너머로 주위를 한번 살핀 후,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자네 이론… 양자 관측 이론 말이야. 그거… 진짜일지도 몰라.”

에단의 숨이 순간 멎었다. “뭐라고?”

“최근에… 아주 이상한 신호를 포착했어. 외계에서 온 건 확실한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제이크는 잠시 말을 끊고 화면에 바짝 다가섰다. 그의 눈동자가 에단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신호, 우리가 적극적으로 관측하려고 할 때만 명확하게 잡혀. 마치… 우리가 보지 않을 때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에단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듯했다. ‘양자적 깜빡임’. 그것은 그의 이론에서 예측했던 현상과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일치했다. 관측 행위 자체가 대상의 존재를 결정한다. 우주는 관측자의 시선 앞에서만 그 실체를 드러낸다.

“믿을 수가 없군….” 에단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의 이론이 더 이상 미치광이의 망상이 아니라, 우주의 냉엄한 현실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것은 짜릿한 전율인 동시에,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공포였다.

“이건 극비 사항이야, 에단. 나도 내 목을 걸고 자네에게 알려주는 거야.” 제이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 신호의 출처나 성격에 대해선 아직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무언가를 건드렸다는 거야. 아니, 어쩌면… 무언가가 우리를 ‘관측’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어.”

제이크의 마지막 말은 에단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미지의 존재. 그것도 인류의 관측 행위에 반응하는, 어쩌면 인류를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 어제 발표장에서 느꼈던 공황 발작, 런던 거리에서 느꼈던 싸늘한 시선이 다시금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이 정보, 절대 발설해선 안 돼. 우리 둘 다 끝장날 수 있어. 알겠나?” 제이크가 재차 다짐을 받았다.

“알아… 알아듣고 있어.” 에단은 간신히 대답했다. 머릿속은 혼돈 그 자체였다. 자신의 이론이 NASA에 의해 비밀리에 확인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희열과, 그 이론이 함의하는 끔찍한 진실에 대한 공포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영상 통화가 끊어지고, 화면은 다시 검게 변했다. 연구실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에단은 멍하니 검은 화면을 응시했다. 어제의 발표 실패로 인한 좌절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신, 더 거대하고 본질적인 두려움이 그의 영혼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틀거리며 다시 책상 서랍으로 향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위스키 병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슬픔이나 좌절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은 이제 개인적인 고통을 넘어선, 우주적 규모의 미지에 대한 존재론적 공포였다.

타는 듯한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갔지만, 그것조차 그의 심장에서 미친 듯이 울려 퍼지는 경고음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는 창밖의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존재하지 않는 별들. 그리고 이제, 그 별들 너머에서… 인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눈’.

에단은 술병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문턱을 넘어섰다는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