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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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5월 09일

빅터 할로우와 MI6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ESA 연구소 내 에단을 향한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노골적인 조롱은 줄었지만, 대신 조심스러운 경계와 불편한 침묵이 그 자리를 메웠다. 설리반 소장은 마지못해 에단의 연구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을 재개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불신과 짜증이 가득했다. 에단은 이 모든 변화가 MI6의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임을 알았지만, 감시 아래 놓인 처지에 편안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연구소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아니, 바람이라기보다는 고요하지만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한기였다.

"여러분께 새로 합류할 연구원을 소개합니다. '해외 교환 연구원' 신분으로 오신, 엘라나 박사입니다."

설리반 소장의 떨떠름한 소개와 함께, 한 여성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에단은 숨을 삼켰다. 며칠 전, 안개 자욱한 거리 카페 창가에서 보았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엘라나.

그녀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한 듯 보였다. 칠흑 같은 긴 머리카락은 어깨 아래로 부드럽게 흘러내렸고,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는 대리석처럼 차갑게 빛났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눈동자는 회의실 안의 모든 것을 무심하게 훑었다. 그녀의 존재감은 너무나 강렬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잘 조각된 인형, 혹은 인간의 형상을 빌린 다른 무언가처럼.

"만나서 반갑습니다. 에단 리브스 박사님의 혁신적인 연구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악기처럼 맑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녀는 에단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그녀의 손은 놀랍도록 차가웠다. 그 차가운 감촉에 에단은 본능적인 위화감을 느꼈지만, 그녀의 지적이고 매혹적인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압도당했다.

엘라나는 놀라운 속도로 연구팀에 적응했다. 아니, 적응을 넘어섰다. 그녀는 에단의 복잡하고 난해한 양자 관측 이론을 단숨에 이해했으며, 막혀 있던 계산의 돌파구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녀의 통찰력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에단은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명석함은 그의 연구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지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내면을 잠식했다. 그녀의 완벽함에는 어딘가… 인공적인 느낌이 있었다. 인간적인 실수나 허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올리비아의 반응은 명확했다. 강렬한 질투와 노골적인 의심. 그녀는 엘라나의 모든 것을 의심했다. 저 완벽한 외모,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듯한 지성, 그리고 무엇보다 에단에게 너무나 빠르고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그 방식까지.

"저 여자, 뭔가 이상해요, 에단." 올리비아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무 완벽하잖아요. 마치… 연기하는 것처럼."

에단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는 엘라나의 도움이 절실했다.

대학의 양자컴퓨팅 연구실.

릴리는 머서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어머니의 메모 해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개발한 초기 단계의 양자 알고리즘을 이용해, 메모에 적힌 기호들의 패턴과 우주 공간의 특정 좌표값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있었다.

수많은 확률의 파동이 양자컴퓨터 안에서 중첩되고 붕괴하기를 반복했다. 릴리는 마치 우주의 숨겨진 문법을 해독하려는 듯,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데이터를 파고들었다.

마침내, 알고리즘이 하나의 결과를 도출해냈다. 메모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정 기호 패턴의 조합은, 놀랍게도 3차원 우주 공간의 좌표를 가리키고 있었다.

릴리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어머니가 남긴 비밀의 열쇠를 찾은 것일까? 그녀는 흥분된 마음으로 해당 좌표를 천문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했다. 당연히 어떤 알려진 항성계나 성운과 일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 좌표는… 텅 비어 있었다.

알려진 어떤 별이나 은하도 존재하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빈 공간’. 암흑물질조차 희박한, 우주의 광활한 공허 중 한 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릴리는 혼란에 빠졌다. 왜? 어머니는 왜 아무것도 없는 우주의 빈 공간을 가리키는 좌표를 암호처럼 남겨 놓으신 걸까? 그곳에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뜻인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그녀는 화면 속의 텅 빈 좌표를 응시했다.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한 오싹한 기분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 순간, 그녀의 손목에 새겨진 하얀 흉터가 다시 한번 아릿하게 느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