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의 대가
제9화
발행일: 2025년 05월 10일
시간은 부서진 유리 조각처럼 흘러갔다. 에단 리브스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미친 사람처럼 새로운 장비 개발에 매달렸다. ‘양자 감응 센서’. 그의 이론을 실증하고, 어쩌면 제이크가 언급했던 그 ‘깜빡이는 신호’의 실체를 포착할 수도 있을, 꿈의 기계였다.
엘라나의 도움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녀는 에단의 복잡한 설계도를 단번에 이해하고, 기술적인 난제를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불가능해 보였던 회로 구성이 마법처럼 완성되었다. MI6는 빅터 할로우를 통해 제한적이지만 최고 수준의 부품과 자원을 제공했다. 감시의 대가로 얻어낸 달콤한 독이었다.
하지만 에단의 상태는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그는 잠을 거의 자지 않았고, 식사는 건너뛰기 일쑤였다. 연구실 한구석에는 빈 위스키 병과 에너지 드링크 캔이 산처럼 쌓여갔다. 손은 미세하게 떨렸고, 눈은 늘 핏발이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정신이 마모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진실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이 그를 불태우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그의 자멸적인 모습을 지켜보며 애를 태웠지만, 엘라나와 MI6의 존재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엘라나는 에단의 건강을 걱정하는 듯 부드러운 말을 건네면서도, 그의 연구 속도를 늦추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의 광기가 만들어낼 결과를 조용히 기다리는 관찰자처럼.
마침내, 늦은 밤. 프로토타입 센서가 완성되었다. 복잡한 와이어와 크리스탈 구조물이 얽힌, 불안정하면서도 강력한 에너지를 내포한 듯한 기계였다. 연구실에는 에단 혼자 남아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센서를 가동시켰다. 낮은 허밍 소리와 함께 기계 중심부의 크리스탈이 희미한 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에단은 잠시 망설였다. 그의 머릿속에 릴리가 발견했던 그 좌표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의 빈 공간. 직감적으로, 그는 센서를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는 센서의 지향각을 조정하고, 릴리가 알려준 좌표를 입력했다. 그리고 출력을 서서히 높였다. 연구실의 모든 불빛이 순간적으로 깜빡거릴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가 센서로 흘러 들어갔다.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오직 우주의 배경 노이즈만이 희미하게 감지될 뿐이었다. 에단은 초조하게 모니터를 응시했다. 역시 헛된 기대였을까?
바로 그때였다.
모니터의 파형이 미세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주 희미했지만, 그것은 분명 자연적인 우주 배경 복사와는 다른 패턴이었다. 불규칙하면서도 일정한 주기를 가진, 명백히 인공적인 양자 요동.
“찾았다…!”
에단은 환호성을 지르려다 숨을 삼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요동치는 파형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그 순간, 눈앞의 모든 것이 암전되었다.
익숙한, 지독하게 익숙한 악몽의 감각이 그를 덮쳤다. 싸늘한 냉기가 온몸을 휘감았고,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에단은 피투성이가 된 채 일그러진 차체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니, 자신이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는… 사만다가 있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 공포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 그녀는 깨진 앞 유리를 통해 필사적으로 에단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보지 마! 에단, 제발… 보지 마!”
그녀의 목소리는 찢어지는 듯한 절규였다.
“당신이 볼수록… 당신이 그 좌표를 관측할수록… 그들이 가까워져! 더는 안 돼!”
사만다의 눈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외쳤다.
“그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어! 함정이었… 으악!”
그녀의 비명과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를 덮쳤다. 강렬한 빛과 함께 모든 것이 하얗게 타들어 가는 듯했다.
“안 돼! 사만다!!!”
에단은 비명을 지르며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연구실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고, 심장은 터질 듯이 날뛰었다. 센서는 꺼져 있었고, 모니터는 검게 변해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방금 본 것은 단순한 악몽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생생했다. 사만다의 절규, 그녀의 마지막 말.
‘당신이 볼수록 그들이 가까워져!’
‘그건 사고가 아니었어!’
끔찍한 의심이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자신의 관측 행위가 정말로 무언가를 현실로 불러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만다의 죽음은? 그녀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제거당한 걸까? 누구에게?
에단은 극심한 공포와 혼란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에는 아직도 사만다의 피 묻은 감촉이 남아있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우주의 비밀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고 있다는 섬뜩한 예감에 휩싸였다. 관측에는… 대가가 따랐다. 그리고 그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끔찍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