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 컨퍼런스 룸. 길고 두꺼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기술 업계의 거인들이 마주 앉아 있었다. 정적 속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흘렀다. 애플, 구글, 엔비디아, AMD, 오페라 소프트웨어… 각자의 로고가 새겨진 노트북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치열한 계산이 오가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크로노스 그룹의 워킹 그룹 미팅 현장이었다. 각 회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기술 외교의 최전선.
그 테이블의 한 자리에, 모질라를 대표하여 블라디미르 부키체비치가 앉아 있었다. 거대 기업들 사이에서 모질라는 비영리 재단이라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파이어폭스라는 강력한 브라우저를 가진 무시할 수 없는 플레이어였다.
의장의 소개와 함께 블라디미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그의 등 뒤 스크린에는 그가 밤새 다듬은 발표 자료의 첫 페이지가 떠 있었다.
"Accelerated 3D on the Web"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여러분 모두가 아시다시피, 웹은 현재 평면의 세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용자들은 더 풍부하고 역동적인 경험을 원하고 있으며, 그 해답은 3D에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그는 먼저 플러그인 기술의 한계를 명확히 짚었다. 설치의 장벽, 보안의 취약성, 그리고 웹 생태계와의 단절. 구글의 O3D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그것이 훌륭한 시도임은 인정하지만 웹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역설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부에서 빌려온 힘이 아닙니다. 웹 그 자체의 힘, 즉 HTML과 자바스크립트를 통해 GPU의 성능을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네이티브 방식의 표준입니다.”
그는 이어서 자신의 ‘Canvas 3D’ 프로토타입을 시연했다. 스크린에는 그가 만들었던 파란색 사각형과 회전하는 삼각형이 나타났다. 구글 O3D의 화려한 데모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하고 단순한 결과물이었다.
회의장 곳곳에서 미묘한 표정 변화가 감지되었다. ‘고작 저걸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는 듯한 회의적인 시선도 느껴졌다.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결과물이 아닙니다. 가능성입니다.”
그는 스크린에 test.html
의 소스 코드를 띄웠다.
<canvas id="myCanvas"></canvas>
<script>
const gl = canvas.getContext('experimental-canvas-3d');
// ... GL commands
</script>
“보십시오. 단 한 줄의 플러그인 관련 코드도 없습니다. 이것은 순수한 웹 기술입니다. 캔버스 태그로부터 새로운 컨텍스트를 얻어내고, 그 컨텍스트를 통해 자바스크립트로 그래픽 명령어들을 호출합니다. 이 명령어들은 브라우저에 의해 철저히 검증된 후 GPU로 전달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의 주장은 명료했다. 고수준의 장면 그래프를 제공하는 O3D와 달리, 그의 아이디어는 OpenGL ES 2.0이라는 이미 검증된 저수준 그래픽 API를 거의 그대로 자바스크립트로 가져오자는 것이었다.
브라우저 제조사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OpenGL을 기반으로 하기에 구현이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이고, 개발자들에게는 강력한 GPU의 기능을 거의 날것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자유를 줄 수 있었다.
발표가 끝나자, 정적이 흘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의외로 구글의 대표였다.
“흥미로운 접근입니다, 블라디미르. 저희도 O3D를 개발하며 플러그인 방식의 한계에 대해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의 발언은 회의장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O3D를 만든 당사자가 블라디미르의 아이디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저수준 API를 직접 노출하는 것은 보안상으로도, 개발 편의성으로도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블라디미르의 작은 아이디어는 마침내 거인들의 테이블 위에 정식으로 올려졌다. 그의 아이디어가 살아남아 위대한 표준으로 거듭날지, 아니면 수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로 잊힐지는 이제 이 테이블 위에서 벌어질 치열한 논쟁과 타협에 달려 있었다.